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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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일제의 압제에서 자유하게 하셨고 해방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백성을 자유하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애굽 바로의 압제에서 모세를 통해 출애굽하게 하셨습니다. 죄와 율법의 굴레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셨음을 믿습니다. 유사 이래 이만큼 잘 산 적이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지난 주간 새벽기도회에서 다니엘서를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향하여 ‘큰 은총을 받은 자’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허락하신 은총을 기억하며 ‘큰 은총을 받은 자여’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여선교회 특별성회 후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확실히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총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눈물로 고백하셨습니다. 큰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니엘은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1 바사 왕 고레스 제 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 2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3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큰 전쟁의 환상을 보고 세 이레 금식하였습니다. 그 때에 힛데겔 티그리스 강가에서 세마포 입으신 분을 환상 중에 만납니다. 그 때 어루만지시는 손길을 경험합니다. 그 때에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고 하십니다. 여전히 다니엘은 마지막 날에 백성이 당할 이를 인하여 ‘내 주여 이 이상을 인하여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니엘이 들은 소식은 성전 재건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성전마저 대적에 의해 파괴되는 극심한 대전쟁의 환상을 보면서 근심에 빠졌던 것입니다. 갈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전쟁과 환란과 시험이 닥칩니다. 절망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니엘을 향해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약할 때에 우리는 은총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시는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새 힘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마침내 구원의 은총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19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큰 은총을 받은 사람’(하무도트)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문자적으로는 ‘아름다운 자’ ‘보배로운 자’란 뜻으로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니엘의 신앙이 보배와 같이 아름답게 여겨졌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큰 사랑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칭찬과 응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자격이 없음에도 큰 사랑과 선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을 9장 23절에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10장 11절에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이라고 했고, 오늘 본문 19절에도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받되 크게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생명력 있는 역사가 있습니다. 기사와 이적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도 구원받았고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33장 12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이라고 고백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누가복음 1장 28절에 마리아를 향해 가브리엘 천사가 말합니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특별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다니엘 모세 마리아에게처럼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총을 받은 사람’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배롭고 지극히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성도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도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총을 받은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광복절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이 민족에게 임했음을 기억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은 민족상잔의 동란으로 모든 것을 잃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어 이렇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함으로 앞으로 하나님의 더 큰 은총을 입는 나라와 민족이 되길 위해 기도합니다.
둘째로 큰 은총을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루만지시고 일으켜 세우시고 새 힘과 평안과 강건함을 주십니다.
‘18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를 강건하게 하여 19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다니엘은 기도하였습니다. 세 이레를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오는 동안 악한 영들이 막는 바람에 세 이레나 걸린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천사가 악한 영들과 싸우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응답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금식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세마포를 입으신 그리스도와 천군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대적과 친히 싸우십니다. 대적을 두려워마라, 담대하라, 평안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영적 싸움의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7절에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천군 천사, 미가엘을 보내서 싸우십니다. 넉넉히 이깁니다. 미가엘이 나가서 싸우는 것처럼 지혜와 명철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은총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승리자이시니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을 어루만지시고 일으켜 세우시고 힘을 주시고 염려 걱정 없게 하시고 평안을 주시면 영육이 강건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니엘이 고백합니다.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말씀하시옵소서 말씀에 순종할 힘과 용기가 생겼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전한 이상에 대한 해석 곧 종말 전쟁에 대한 진정한 메시지는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는 데 있습니다. 삶의 위기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의의 최후 승리를 믿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주님의 평안이 임합니다. 영육이 강건하게 됩니다. 은총을 입은 자를 힘주시고 동행하시고 어루만지시며 위로하시고 도우시는 역사가 성도 여러분의 삶에 이루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기에 자신을 우상으로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왕의 진미로 자기를 더럽힐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은총을 받은 까닭에 그는 허물이 없었습니다. 시기하는 관리들이 그를 고소할 틈과 허물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6:4). 치부하지도 않았습니다. 권세를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정직했고 하나님께 충성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기도했고(단6:10)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며 기도했습니다(단9:3).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은 자들만 할 수 있는 귀한 행동이 기도입니다. 기도할 수 없을 때에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힘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상7:14)고 하셨습니다. 뜻을 정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큰 은총을 입은 사람의 기도에 하나님은 신속히 응답하십니다. 어루만지시고 힘주시고 치유하시고 일어서게 하십니다. 큰 은총을 받은 자여 두려워 마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이 같은 큰 은총을 누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은 그 은총에 대한 감사와 자발적인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은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로서 그 자신이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공허한 것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에 모든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참여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개인의 결단과 선택 그리고 끝까지 그 은혜를 깨닫고 공헌한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손녀에게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하는 이야기 중에 잘못된 것을 찾아봐라. 항상 같은 장소에서 구걸하던 거지가 어느 날 지나가던 신사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재작년까지 내게 늘 만원씩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작년부터 오천 원으로 줄이더니 올해엔 또 천원으로 줄이셨습니다. 대체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신사가 ‘전에는 내가 총각이었으니 여유가 있었지요. 하지만 작년에 결혼을 했으니 오천 원 주었고, 이제는 애가 생겼으니 천원밖에 못 드립니다.’ 그러자 거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니 그럼 내 돈으로 당신 가족을 부양한단 말입니까?’ 이 얘기 속에서 잘못 된 게 뭐지?” 도대체 누가 어이없어야 할까요?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많다고 가치가 적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큰 사랑 큰 은총을 받음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깊음을 알고 깨닫고 그 사랑 인하여 하나님의 맡겨주신 사명의 삶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 모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찌 찬양 안 할까 고백하며 감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큰 은총을 받은 사람 성도 여러분, 주님이 맡기신 복음 전파의 사명 복을 살아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삶으로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고후 6:4-10) 본문의 역설적인 표현은 바울 자신의 실제적인 의미와 신학적인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바울은 죽음의 위협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행14:19, 고전15:30). 거의 죽게 된 상황에까지 갔었습니다.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1:8-9). 또한 그는 예수의 죽음을 그의 몸에 짊어지고 다녔습니다(고후4:10-12). 여기에는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5:14-15).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사도 바울은 그 자신이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께 헌신된 도구였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적인 특징인데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았음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빚을 갚아 영광 돌리는 민족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큰 은총이 우리에게 힘과 용기와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맡겨주신 복음 증거, 은혜 증거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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