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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2021년 3월 7일 낮추라 높이시리라
2021-03-07 13:04:11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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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크신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순절 세 번째 주일 3월 첫 주일을 맞이하여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누가 서로 크냐고 다투는 제자들 앞에 어린아이를 세우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도 하셨습니다. 천국의 주인공인 영아부 어린이들을 영상으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염려하십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영적인 바이러스는 교만입니다. 하나님 앞에 절대 취하지 말아야 할 자세가 교만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고난 역경 환란 질고가 아니라 풍성함 속에 생긴 교만함입니다. 역대하 2516절에 웃시야 왕이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놀란 제사장들이 말립니다.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그 때에 ‘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웃시야는 ‘4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해주셨던 왕입니다. 그런데 그가 강성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교만을 건방진 말 뻣뻣한 목으로 말하지만 성경은 눈으로 설명합니다. 교만한 눈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찾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눈에 뵈는 것 없다이런 말을 하는데 교만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보이는데 그것을 주신 하나님은 안 보이는 게 교만입니다. 웃시야도 강성해지자 교만해졌고 히스기야왕도 죽을병에 걸렸다가 나았을 때에 치유소식을 듣고 찾아 온 바벨론 사신들에게 자신의 창고 안에 있는 모든 보물을 자랑했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보아야 합니다. 낮추면 높이신다고 하셨습니다. 겸손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겸손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두 개 있습니다. ‘차나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란 뜻으로 개인의 인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나와는 자신을 낮춤으로 상대를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에도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프라우스는 히브리어의 차나처럼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고 타페이노스는 히브리어의 아나와처럼 자신을 낮춤으로 상대를 높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이란 개인적인 도덕적 소양임과 동시에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교만(가온)은 하나님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지혜나 능력을 자랑하며 스스로를 존귀한 자로 여기는 것이며 거만(고바)은 상대방을 멸시하는 불의한 행동입니다.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고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낮추라 높이시리라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기에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낮추라 높이시리라 말씀 하신 것은 우리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9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왜 겸손해야 합니까? 앤드류 머레이는 그의 책 겸손에서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동기를 말하면서 우리가 피조물이기에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겸손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취해야할 마땅한 태도이며 또한 하나님이 이 같은 겸손을 피조물인 인간에게 요구하시며 겸손한 자를 찾으신다고 합니다. 375개의 금언으로 되어 있는 솔로몬은 잠언(10:1-22:16)에서 신본주의적인 지혜를 구비하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어리석은 자를 반복 대조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절대로 이것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게 된 것도 교만 때문입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사단의 교만 유혹(3:5)에 하와가 넘어간 것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것도 자신이 동생 아벨보다 낫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시작된 바벨탑은 무너졌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식을 가지게 되자 교만해진 하갈은 사라에게 내쫓겼습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을 때의 사울은 순진하고 겸손하였으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삼상18:7)는 여인들의 노래를 들은 후에 다윗을 시기 질투하는 마음과 교만 때문에 악령에까지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교만이 망하는 길로 가는 확실한 지름길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패망의 선봉! 넘어짐의 앞잡이! 그것이 교만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인식하는 사람이 교만을 버리고 겸손할 수 있습니다. 내 생명의 창조주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삶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고백으로 살 때에 교만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낮추며 겸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창조신앙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너무도 사랑하십니다. 피조물이기에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겸손을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실 때에 한 가지 목적을 품고 계셨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복되심에 참여토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피조물 가운데에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권능을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피조물과 교통하시면서 그분의 선하심과 영광을 충만히 베풀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피조물 가운데 그리고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드러나기를 원하셨습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피조 되었기에 매순간 하나님이 동일한 능력으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피조물은 자신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돌아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은총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겸손으로 내려놓아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겸손의 상실이 타락의 시작입니다.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요, 지옥의 시작이며,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성적인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렇기에 겸손의 참된 본질과 절대적 필요에 대해 눈을 뜨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겸손은 우리의 전적 무익함을 인정하는 낮아짐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하나님이 만유의 창조주이심을 깨달을 때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이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을 깨닫고 겸손하기로 결단하고 하나님의 생명과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피조물로서의 위치를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 주인의 자리를 내어드리는 겸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나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음으로 겸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권능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죄 가운데 있는 죄인이기에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토마스 아퀴나스는 겸손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십니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겸손을 알려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겸손을 회복하는 것 즉 피조물이 하나님과 맺었던 원래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우리가 그분의 겸손함에 동참함으로 구원을 얻게 하려하심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시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성육신 신앙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보는 겸손은 주님이 천국에 계실 때부터 가지고 계셨던 겸손입니다. 이 겸손이 있었기에 이 땅에 오실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시면서 천국의 겸손을 함께 가지고 오셨습니다. 여기 이 땅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2:8). 예수님의 겸손이 있었기에 주님의 죽음이 가치가 있습니다. 그 겸손으로 인하여 주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구속이 되었습니다. 대속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구원은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예수님 자신의 삶과 죽음 성품과 정신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근원이기도 한 예수님 자신의 겸손을 우리와 나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인하여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낮추셨기에(humiliation) 하나님이 주님을 높이셨습니다(exaltation).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겸손을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얻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곧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분의 구원은 곧 우리의 겸손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겸손을 사랑하고 사모함으로 우리의 교만을 깨닫고 우리 힘으로 교만을 물리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서 교만이 죽지 않으면 천국이 우리 안에 거할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영에 여러분 자신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내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겸손의 씨를 뿌리지 않으면 천국에서 아무것도 거둘 수 없습니다. 십자가 구속의 주님을 바라보며 심령의 무릎을 꿇고 참된 겸손을 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입니다. 교만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겸손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구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자기부인과 희생과 겸손을 바라봄으로 천국 구원을 이루며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도이기에 겸손히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동기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주셨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기에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가야 합니다.

 

야고보는 교회 안에서 다툼과 싸움의 원인을 살피고 그 해답으로 이기적인 정욕을 지적하였습니다. 세상과 벗하고자 하면 하나님과는 원수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야고보는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순복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오직 겸손하게 머물러 있기만 하면 창조 때보다도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자기를 낮추면 주님이 높이실 것입니다. 교만을 물리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라고 하시는 그 일을 행하시면 됩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주님께서 행하겠다고 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실 것을 믿어야합니다. 즉 주님이 여러분을 높이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낮추라 높이시리라! 주님의 명령은 분명합니다. ‘자기를 낮추라’(humble yourself). 이 말을 글자 그대로 풀면 우리 힘으로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을 정복하고 몰아낸 다음 우리 힘으로 우리 안에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이루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낮추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높이사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게 하십니다. ‘자기를 낮추라는 명령이 뜻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여러분을 낮출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에게 이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승리케 하시는 은혜를 확신하는 사람에게 이 일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변함없는 명령을 흔들림 없이 지켜가야 합니다. 낮출 수 있는 기회를 잡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서든 밖에서든, 친구나 원수를 통해서든, 자연적이든, 은혜로 주어지든 것이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겸손케 하고 또 겸손 가운데 살도록 도울 것입니다. 겸손을 참으로 가장 귀한 미덕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첫째가는 의무이며 영혼을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하는 보호막입니다. 모든 축복의 근원이 바로 겸손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거룩하고 확실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한 가지 일 곧 자기를 낮추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약속하신 한 가지 일 곧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며, 정하신 때가 되면 성도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이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피조물이 누리는 최고의 영광을 받아들이고 즐거워하며 그 영광을 드러내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은 피조물이 자원하여 스스로를 아무것 아닌 존재가 될 때 가능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물은 항상 가장 낮은 곳을 먼저 채웁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더 낮아지고 자신을 더 비울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은 더 신속하고 풍성하게 그 사람 안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채워질 때에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완벽히 소유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진 존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얼마나 높이신 것입니까?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진리의 말씀에 대한 증거이십니다. 그 약속이 분명히 성취될 것에 대해 그분이 우리에게 보증이 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분께 배워야 합니다. 주님이야말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똑같은 멍에를 메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이신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눌수록 그분을 높이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머무실 것입니다.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임재와 그 능력은 겸손한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거하시게 되면 그분은 우리를 높이십니다.

 

우리의 약점은 이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행했지만 결국은 내가 내 힘으로 행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았지만 그것은 나 자신과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의 영혼이 나 자신과 나의 행복에서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겸손과 자기 비움이 우리가 추구하는 거룩한 삶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게 배우라고 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배우며 그 겸손이 자신을 낮춘 심령마다에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겸손함으로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십니다! 우리는 정말 작습니다! 그 무한한 사랑 안에 삼키웠으니 하나님만 계시고 나는 없습니다! , 더욱 비워지게 하소서. 더욱 낮아지게 하소서. 더욱 초라해지고, 주목받지 못하고, 알려지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께는 더 거룩한 그릇이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를 충만히 채우소서.’

 

우리는 피조물이기에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죄인인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성도로서 주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지는 겸손을 살아가야 합니다. 낮추라 높이시리라 약속하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순절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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