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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사도 바울의 질문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19.09.15  
조회 : 64  
  본문말씀 : 시 118:1-9, 롬 8:31-39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시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할렐시(113-118) 중 마지막 시편이 118편입니다. 절기 때에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교창하며 올라가는 찬양시입니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후렴구로 교창 하는 순례자들이 감사의 찬송을 드리고 있습니다. 성전에 오르는 자들이 체험하고 찬양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영원과 구원과 생명에의 축복을 예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성도들 편이심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창조주 만왕의 왕께서 보호하시는 지키시니 누가 성도들을 해치겠습니까?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하나님의 인자 헤세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 대하여 베푸시는 자비와 은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인간을 향해서 분에 넘치게 부어주시는 언약적 사랑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이후에 평생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붙들려 살았던 사도 바울이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켜 주심과 건져 주심의 확실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입니다. 우리를 위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인간의 곤궁 속으로 내어 주신 것은 결코 속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의 확실한 표시입니다. 거기에 맞서 무슨 시비를 걸 수 있는 고발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어떠한 불행도, 어떠한 핍절도 우리를 그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입증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외적인 불가능성과 좌절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승리를 알게 해 줍니다. 우리의 삶을 규정하거나 위협하는 권세자들과 현실적인 것들과 생의 모든 차원들의 아무 것도, 그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하나님 사랑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그 은혜로 확신을 갖고 승리를 노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대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나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나는 거룩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향한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첫째로 본문 말씀은 여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붙들고 오랫동안 씨름해 온 바울이 외치는 심봤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삶을 변화시키는 다섯 가지 질문을 던져 놓고 정답을 풀이해 주는 중입니다.    

첫 번째 질문 -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 하나님의 임재는 견고한 울타리 같아서 주의 자녀들의 안전은 영원히 보장됩니다. 누가 감히 해칠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 질문 - ‘자기 이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8:32)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구해 놓고 다음부터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방치해 두시겠습니까? 하늘나라의 소망만 강조하시면서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든지 모르는 일이라고 외면하시겠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세 번째 질문 -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8:33)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기로 작정하셨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속의 자아는 물론이요, 천하에 다시없는 인물이 시비를 건다 해도 하늘나라 재판정에서는 입도 뺑끗 못합니다. 일단 주님이 용서하시면 세상 누구도 물고 늘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질문 -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이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8:34)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에서 손만 내밀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우리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분이 앉아 계십니다. 최고의 권세를 지닌 분만 앉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고소인이 우리 잘못을 열거하자 가끔 스스로의 양심이 고개 들고 우리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금방 조용해집니다. 예수님이 변호사로 나서셔서 입을 막아버리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죄인을 감싸주실까요? 그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 질문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8:35) 여기가 클라이맥스입니다. 앞서 설명한 네 계단을 모두 통과해서 이곳 정점에서면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낼만한 요소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합니다. 주님의 헌신적인 사랑이 끝났다는 증거가 단하나라도 있습니까? 아니면 바울의 질문처럼 문젯거리가 생기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고, 핍박을 받거나 굶주리고, 한데서 추위에 떨며 자거나 생명을 위협받는 처지가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해야 하는 겁니까?(8:35)   

바울은 적을 일렬로 세워 놓고 하나하나 격파해 나갑니다. 환란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사망 생명 천사 권세자 현재 일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음 그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젯거리도 역경도 아닙니다. 미움도 배고픔도 아닙니다. 집 없이 떠도는 생활도 아닙니다. 불량배의 협박도 중상모략도 아닙니다. 심지어 성경에 기록된 가장 흉악한 죄도 아닙니다.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흠집을 낼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바울은 여기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원문으로 살펴보면 사도바울이 얼마나 정확한 시제를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원문의 시제를 따라 옮기자면 38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가 확신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확신하노니한번 스쳐가고 마는 상념이나 애매한 생각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라는 겁니다. 도대체 무엇이 바울에게 그토록 깊은 확신을 주었을까요?   

성령께서 바울을 주장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모셨던 제자들을 찾아가 그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설명하시더냐고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제자들 머릿속에 유월절 만찬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올랐겠지요. 대단한 밤이었습니다. 좋은 음식에 좋은 친구들이 다 모였습니다. 아무런 방해 없이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식사 도중에 예수님이 폭탄선언을 하십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26:31) 베드로가 나서서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26:33)라고 말씀 드리자 나머지 제자들도 같이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채 새벽이 되기도 전에 모두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14:50). 단 한 명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지체 없이 주님을 버렸던 겁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서 다시 살아나신 뒤 단 한 번도 그날의 사건을 문제 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배신자들이 모여 있는 다락방에 들어오시면서 한마디쯤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 그리스도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시는 주님! 죽음에서 돌아오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주님만이 의심하는 자를 위해 다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을 버려도 여전히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부인해도 여전히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의심해도 여전히 사랑해 주십니다. 바울은 확실히 믿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십니까? 정말 외롭다고 생각했던 시절에도 주님이 함께 하셨음을 이제는 아시겠습니까?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버려진 채 사랑받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렸던 시절에도 주님은 여전히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낯을 피해서 숨었을 때도 꾸준히 찾아오셨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가장 큰 뉴스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게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됐다는 게 아니라 그분이 이미 우리를 아신다는 소식입니다. 주님은 못 자국 난 손바닥에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겨 놓으셨습니다. 모든 자녀들을 마음에 품고 계십니다.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키십니다. 가장 추한 모습일 때조차 사랑하십니다. 오늘 죄를 저지르고 내일 다시 실족한다 하더라도 놀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세상 모든 이들을 샅샅이 알고 계십니다. 그처럼 세밀히 들여다보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로 결정하십니다. 한없이 추한 꼴을 보셔도 실망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등을 돌려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믿고 나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심으로 이루어진 용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용서의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용서는 선택입니다. 아니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는 한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용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으로 하여금 그를 통하여 구원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5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그의 용서를 베푸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온 세상에 그의 용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회개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사랑용서인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파리에 앙리코라는 이태리계 프랑스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건설업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 그는 밖으로 나가 목재들을 쌓아놓은 뜰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두 사람의 그림자가 트럭에서 뛰어내려 목재가 잇는 곳으로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네가 어떻게 할까요?’ 그때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벌써 적지 않은 목재를 트럭에 싣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다가가 조용하게 그 일을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몇 분 후에 그가 이 목재들을 어디에 사용하려고 합니까?’ 두 사람이 그 용도를 말하자 그는 이들에게 다른 목재더미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쪽에 있는 나무들이 더 좋겠군요.’ 트럭이 가득 찼을 때 한 사람이 앙리코에게 말했습니다. ‘제법 쓸모 있는 도둑이군!’ ‘나는 도둑이 아니오.’ 앙리코가 대답했습니다. ‘, 도둑이 아니라고? 오늘 밤 내내 우리 일을 도왔잖아.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면서도 말이야.’ ‘그렇소. 나는 당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소. 그렇지만 난 도둑이 아니오. 왜냐하면 이곳은 내 땅이고 이 목재들은 전부 내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자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때 앙리코가 두려워 마시오. 나는 당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았지만 경찰을 부르지 않기로 결심했다오.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모르는 것 같소. 당신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싶소. 이 목재를 가져가도 좋으니 우선 내 말을 잘 들어보시오.’ 그들은 꼼짝없이 앙리코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 생긴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은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귀담아들었고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후에 목사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장로가 되었습니다.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고해 볼 때 한 트럭의 목재는 두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에는 너무나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것은 한 트럭분의 공짜 목재가 아니라 그 건축업자의 용서였습니다. 그들은 앙리코가 자신들을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뉘우치기 전에 용서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게 베풀었던 것과 같은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서기 전에 베풀어 주신 용서인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우리에게 자유를 줬습니다. 구원을 줬습니다. 그 용서를 깊이 깨닫고 용서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최후 승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구부정하고 쇠약한 몸으로 편지를 쓰고 있을 사도를 생각해 봅니다. 그의 등은 편안한 침상의 감촉을 느껴본지 오래되었고 그의 입은 맛있는 음식을 맛본 지 까마득합니다. 30년 동안 두루 돌아다니며 고초를 겪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다툼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에서는 경쟁과 분열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에서는 초등학문에 매여 있는 율법주의자들이 들끓고 있었습니다. 그레데에는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에베소에는 바람둥이들이 들끓었습니다. 친구들 몇몇은 배반하고 떠났습니다. 홀홀단신 무일푼 시력은 약해졌고 몸은 쇠약해졌습니다. 한때 황제 앞에서 설교했고 아레오바고 남성 클럽에서 연설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열두 사도를 만나기도 했지만 곧 떠났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도시에서는 돌을 맞았고 어디서는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히기도 했고 물에 빠져 죽을 뻔도 여러 번 했습니다. 굶어죽을 뻔도 했습니다. 그가 한곳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다면 그곳은 필경 감옥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영웅의 면모는 아닙니다. 그는 자기를 가리켜 지상 최대의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탄식도 했습니다(7:24). 고발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고 추격당하고 있습니다. 괴상한 신앙을 가진 노인네로 결국 스러질 존재로 보입니다. 결코 승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오호라 고민하고 그가 이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묵상하다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7:25)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2:14) 승리를 노래하였습니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사랑이 최후 승리를 가져 왔습니다. 참된 승리는 의의 문제입니다. 진실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의롭게 여겨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웃 앞에 참으로 진실함이 승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의에 동참하고 연합된 결과로 그 의를 힘입어 자랑스럽게 누가 나를 송사하겠느냐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참 승리는 하나님 자녀됨의 확신에 있습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분이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실 것이기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선언했습니다. 패배로 보이는 바울의 모습은 작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거대한 눈사태 뒤에는 눈송이가 있습니다. 산사태 이면에 자갈돌이 있습니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홍수가 되기도 합니다. 복음의 역사는 이 같은 승리를 가져 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 복음은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어떤 위험이나 환란이나 질병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기고 그 은사로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고 있는 동안에는 시험도 죄도 율법도 이기며 거짓과 게으름, 나아가서는 나 자신과 세상도 이긴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창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영원한 승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확증되어 있고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최후 승리가 하나님의 것임을 믿고 고백하며 강하고 담대함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에서 하나님의 승리에서 우리는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확신 속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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