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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19.09.22  
조회 : 52  
  본문말씀 : 겔 36:22-28, 요 7:37-39

우리의 예배와 찬양을 받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성도들에게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주간 국내 성지순례를 하였습니다. 제암리 감리교회, 수촌 감리교회, 안동교회, 기독서원, 대구제일교회, 동산병원, 신명학교 등 대구 지역의 베어드(배위량) 선교사의 선교지를 둘러보았습니다. 복음의 일꾼들이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이역만리 한국 땅에 와서 갖은 어려움과 역병과 싸우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베어드 선교사의 부인은 한국식으로 배위량 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린 자녀를 뇌수막염으로 잃고 그의 심신이 곤한 가운데 찬송가 가사를 적었습니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예수 예수 내주여 마음 아파 울 때에 눈물 씻어주시고 나를 위로 하소서 예수 예수 내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다니다가 쉴 때에 쓸쓸한 곳 만나도 홀로 있게 마시고 주여 보호하소서 예수 예수 내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찬송387) 이 찬송으로 위로와 용기를 얻고 부산에서 대구 안동 그리고 평양에서 선교하였고 숭실학교 등을 세웠습니다. 한국 선교는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이 역사하셔서 한국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백성을 죄와 절망의 자리에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고 반드시 구원해 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집념과 열심이 정하신 때를 따라 구원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질 그 벅찬 순간을 고대하면서 인내와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에스겔361-15절은 잃어버린 땅의 회복 곧 예루살렘 고토의 회복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신분을 회복하시는 예언입니다. 비참한 상황과 그 비극의 원인은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비참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랑 그리고 그 위대하심을 선포함으로 그 선포를 듣는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으로 그의 백성을 회복시키십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22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신분을 회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으로 자기 백성에게 새로운 미래를 허락하십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11:8-9)고 말한 호세아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중요했고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5:24)’라고 말한 아모스에게는 하나님의 정의가 중요했다면 에스겔에게는 하나님의 명예, 곧 거룩하심이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회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예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회복시켜주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는데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자각 시켜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그의 백성을 인치심으로 하나님의 소유로 확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가 확정되었습니다. 보증(아라본)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분이 확정되었습니다. ‘나 예수 사람이야’ ‘나 하나님의 사람이야라는 긍지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믿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긍지가 있어야 합니다. 양반 긍지의 고향 안동에도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셔서 안동교회가 크게 세워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긍지를 가지고 설명해주신 원로 장로님께서 안동 선교의 발상지라고, 나리 나리 개나리 작곡하신 권태호선생이 반주자였다고 자랑합니다. 4대 목사 가정 4대 장로 가정 자랑합니다. 6·25 피난 시절, 피난 온 감리교인을 위해 감리교회를 세웠다고 자랑했습니다. 긍지가 대단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회복시켜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으로 그의 백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맑은 물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여기 맑은 물은 물리적인 의미에서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정결한 물을 가리킵니다. 동시에 정결예식에서처럼 죄와 허물, 더러운 것으로 덮여져 있는 것을 벗겨내기 위해 씻어냄을 말하고 있습니다. 죄를 벗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뿌린다(자라크티)는 것은 높이 던져 끼얹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결예식에서 피를 뿌림으로 그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245:6-8).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 백성이 자기에게 나아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맑은 물을 뿌림으로 말미암아 부정하거나 속된 것이 하나도 없는 하나님께 완전히 속할 수 있는 구별되고 성별된 존재가 되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29:20).   

물은 성경에서 세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을 상징합니다(2:13,17:13). 구원은 오직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도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55:1-3)’고 외쳤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 기갈에서 살리신 것(21:14-19)도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갈증으로 목말라 고통당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신 것(15:23-25,17:6)도 바로 하나님이 주신 물이었습니다.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현실은 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 성경에서 물은 씻어 정결하게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부정을 씻고 정결을 위해 물이 필요합니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기 위해 정결케 하는 물의 세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정결하게 되어야할 존재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구원받았고 또 구원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은 성령 하나님을 상징하는 용어로 자주 쓰였습니다. 내 영을 부어 주리니(2:28-29),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4:14), 오늘 본문의 생수의 강등이 모두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 복음을 가지고 성도들이 영생에 이르도록 이끄는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생명수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생명의 구원과 깨끗하게 하심과 성령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현실을 기억하며 갈급함으로 주님을 향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선언 위에 서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두 가지가 늘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인간이 얼마나 악한가, 인간이 얼마나 타락해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성품, 지식, 계획, 모든 판단은 다 타락한 것입니다. 전적타락, 완전 타락입니다. 그래서 지식은 교만에 이르고 감정은 향락으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허영과 절망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지식과 나의 판단을 믿을 수 있습니까? 내 감정, 이 변덕스러운 인간을 믿을 수 있습니까? 감정은 믿을게 못 되고, 나도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는 게 인간인 것입니다. 내 의지는 교만과 고집으로 치닫게 되고, 여기에서 남는 것은 못된 고집만 남고 맙니다. 따라서 이것 또한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래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성령이 기뻐하시는 마음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정결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믿고 따라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으로 말미암은 성령주도형의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26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새 영 새 마음에서 ’(하다쉬)다시 세운다’, ‘새것이 되다하다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전 것과는 전혀 다른 근본적인 변화를 거쳐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완전히 다 벗고 새 사람으로 입어야 합니다. 마치 나비의 애벌레가 변하여 전혀 다른 모습의 나비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과거의 모든 실패한 일이나 수치스러운 일이나 부끄러웠던 일을 다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의 반대말은 사람을 망쳤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술에 중독되거나 도박에 빠지거나 마약을 해서 사람이 못쓰게 되었을 때 저 사람은 완전히 망쳤다혹은 폐인이 되었다는 말을 씁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갑자기 멋있어 지거나 이전의 부도덕한 삶을 모두 버리고 착한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저 사람은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다는 말을 씁니다. 군대 갔다 와서 새 사람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나빠지지도 않고 크게 새 사람이 되지도 않고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평범하고 무의미한 삶이라는 것은 사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나빠지고 퇴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음식이나 물건들은 가만히 두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패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패하지 않게 하려면 자꾸 신선하게 해야 하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어서 새롭게 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능력은 사람을 새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를 향하여 단순히 새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만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나타나는 외모나 행실까지 완전한 새사람의 언어나 행실로 입으라는 뜻입니다. 구더기 같은 애벌레에서 나비 같은 새 존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23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벗고 입기의 신앙으로 성령 주도형의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새 영,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은 죄로 물든 완악한 굳은 마음과 대조되는 말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 마음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율례를 지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이렇게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거주하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백성이 될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를 위하여(20:44) 자기 백성에게 새로운 미래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시 용서하시고 다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는 동기를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11:8-9)에서 보았고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예, 곧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그들의 하나님! 이것은 하나님의 일관된 약속이었습니다(17:7,4:31).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성령이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평신도 상담가인 래리 크랩의 책 영혼을 세우는 관계의 공동체에서 우리 안에는 두 개의 방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 본성이 중심이 되는 아랫방! 우리가 만들고 우리의 타고난 자아가 자라는 방이고 또 하나는 성령께서 세우신 방 윗방! 거기서는 우리의 타고난 자아는 죽고 새로운 자아가 자라는 곳 성령이 지배하고 다스리시는 방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래리 크랩은 C. S. 루이스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뭔가 다르다. 더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든 것을 내게 다오.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시간, 너의 돈, 너의 일이 아니다. 나는 너를 원한다. 나는 너의 자아를 고통스럽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그 자아를 죽이려고 왔다. 어중간한 것은 소용없다. 그저 가지치기나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나무 전체를 잘라내기를 원한다. 너의 자아를 모두 나에게 넘겨라. 네가 순결하다고 여기는 욕망은 물론 악하다고 생각하는 욕망까지 모두 다 넘겨라. 대신 내가 새로운 자아를 주겠다. 너에게 나 자신을 주겠다. 나의 뜻이 너의 뜻이 되게 해 주겠다.’ 그러니 주님께 넘겨 드려야 한다.” 윗방 하나님이 주인이신 성령이 기뻐하시는 윗방의 삶을 살아가라고 합니다. 경건한 영성적인 삶,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때에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 그분과 의논하며 그 분께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성령과 동행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재미있는 예를 들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읍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튼 다음, 걱정리를 동쪽에 두고 3-4킬로미터 좀 올라가십시오. 피로계곡으로 통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탈진마을 기진맥진 거리에 이릅니다. 주민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마을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산골동네를 전전하는 방울장수의 노새처럼 온갖 잡동사니들을 죄다 젊어지고 다닙니다.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걷습니다. 얼굴에는 기쁨이 없고 어깨는 축 늘어졌습니다. 왜 그렇게 힘이 빠졌느냐고 물으면 자동차를 가리킵니다. “댁도 저 차들을 밀고 다녀봐요. 십분도 못 돼서 지쳐버릴걸요?” 그러고 보니 다들 자동차를 밀고 다닙니다. 어깨를 대고 힘을 줍니다. 기운을 쓰느라 뻗댄 발에 흙이 밀립니다.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쉴 때조차도 좌석에 앉는 법이 없습니다. 트렁크에 걸터앉는 게 고작입니다. 어이가 없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얘깁니다. 시동을 켜서 엔진을 돌린 뒤에 기어를 중립에 놓고 밀고 가다니, 두 눈으로 똑똑히 본다 해도 믿기 어려울 겁니다. 아무나 붙들고 까닭을 물어보기로 합니다. 젊은 엄마가 끙끙거리며 미니 밴을 쇼핑센터 주차장에 밀어 넣고 있습니다. “휘발유가 떨어졌나요?” 여자가 대답합니다. “아니요. 기름은 시동 걸 때만 써요.” 괴상한 대답입니다. 하지만 바퀴가 열여덟 개나 달린 자동차를 허덕허덕 밀고 올라가는 친구보다는 낫습니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 마치 뚱뚱한 마라토너처럼 숨을 몰아쉽니다. “이렇게 큰 차를 언제나 밀고 다니세요?" “그럼요산소마스크를 뒤집어쓰며 그가 말합니다. “액셀레이터만 밟으면 될 걸 왜 그렇게 힘을 쓰죠?” 갑자기 그가 자기 팔뚝을 두드립니다. “내가 누구요? 탈진마을의 운전사죠. 이 정도는 내 힘으로 충분히 끌 수 있다고요사실은 뭐 그렇게 힘이 있어 보이지도 않습니다만, 그냥 입을 다뭅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좀처럼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들이지? 페달만 밟으면 저절로 굴러갈 텐데, 왜들 저러고 다니는지 모르겠어. 세상에 이런 이들이 또 있을까?’

탈진마을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거길 가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사시장철 침울하게 살아간다면 예수 믿지 않는 이들의 삶과 다를 게 무어란 말입니까? 트럭을 공짜로 줄테니 밀고 다니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칩시다. 여러분 같으면 냉큼 받겠습니까? 아무도 받아 가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도 자녀들이 그렇게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주의 백성들이 꽁꽁거리며 자기 삶을 밀고 다니는 건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기진맥진 지쳐 버린 크리스천들에게 성경은 어떻게 충고합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의 안에서 살아가십시오”(2:6)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타는 듯 목이 말라야하고, 마음 깊은 곳까지 생수를 들이마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한 그 능력이 삶속에 살아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1:6) 주님은 자동차를 주면서 밀고 다니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열쇠를 넘겨주면서 타고 다니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실까요? 뒷문을 열어 주시면서 어서 타라고 초청하십니다. 삶을 두루 여행할 테니 안전벨트를 매라고 권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차를 타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강이란 단어는 홍수를 의미합니다. 홍수가 나서 떠밀려가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하고 탁월한 하나님의 임재가 마음의 물길을 따라 쏟아져 내립니다. ‘속에서 영생하도록’(4:14) 샘물이 솟아납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해집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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