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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주밖에 사모할 자 없나이다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19.10.20  
조회 : 33  
  본문말씀 : 시73:20-28, 엡3:14-19

사람은 때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한 가치를 모를 때도 있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의 것만 좋아 보이고 귀하게 보여 자신은 불행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불행은 대부분 비교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비교하지 마십시오. 비교하면 비참해지거나 교만해 집니다. 그래서 비교라고 합니다. 오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불행합니다. 본래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소중한 사람과 살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몰라 오해한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그중에 특히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정말 불행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받지 못했다고 불평합니다. 나중에 알면 후회합니다. 아쉬워합니다. 진작 은혜를 알아차려야 했었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받은 것 가진 것, 되어진 것, 내가 처한 모든 것의 은혜로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은 은혜를 알기 어렵습니다.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내 능력의 보상으로 내 공로로 착각합니다. 은혜를 권리로 알면 안 됩니다. 더더욱 은혜가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은혜를 아는 자가 행복합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은 행복합니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이것이 사도 바울의 삶의 원천이었습니다. 종교 개혁자의 신앙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오직 은혜! 은혜와 믿음이 생명의 근원이었고 믿음의 근본이며 행복의 뿌리였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마귀는 의심과 교만을 낳지만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들이는 자는 그 마음속에 믿음과 겸손이 있습니다. 불신과 교만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불안과 저주와 원망이 가득해서 불행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 자체가 은혜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 이것이 신앙의 진실입니다. 믿지 않겠다고 하는 자에게는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2:8). 믿어지는 마음 그 자체가 틀림없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겸손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믿음과 겸손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이 선물이요 모든 것을 감사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주밖에 사모할 자 없나이다 고백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입니다. 아는 게 은혜입니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자기 공로나 노력이나 결단이나 의지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임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은혜, 살면 살수록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는 선물을 선물로 알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선물을 알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 계시의 영에 대하여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사실 안다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끝까지 모르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게 해주신 이 은혜는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감추어진 자에게는 영원히 감추시고 망할 자에게는 영원히 비밀일 수밖에 없는 것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은혜로 알게 하셨습니다. 은혜를 내 온 마음이 온 몸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꿈에서 깨듯이 알게 하시고 계시의 영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신비 십자가의 비밀 그 능력 그 은혜 그 지혜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고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생명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신 것, 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입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를 끝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7-19)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하면서, 바울은 깊이의 개념을 빼놓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3:17,18)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그만큼 깊이 빠질 수 있을까요? 너무 깊이 들어가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에 빠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8세기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데이빗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선교사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한적한 곳으로 물러난다. 마음에는 놀라운 평안이 가득하다. 욕망을 날숨처럼 내뿜는 것만이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일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낀다. 하나님이 참으로 소중해서 거기에 비하면 세상이 주는 어떤 쾌락도 더러워 보일 뿐이다. 인간의 애정을 얻으려는 욕구는 자갈을 갖고 싶어 안달하는 자세와 다를 게 없다. 매일 정오가 되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극점까지 치솟는다. 평생 그랬다. 나만의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 사랑하는 주님과 대화한다. 내가 그분만을, 경건한 삶만을 소망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아신다. 달콤한 평안이 거기서 흘러나온다. 하나님이 그런 소망을 주셨으며, 그걸 채워 주실 수 있는 분도 주님뿐이다. 그토록 자아에서 벗어나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드린 적이 또 있던가 날마다 내 마음은 하나님 안으로 깊이 빨려 들어간다.’ 이토록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깊숙이 내려가려는 소망을 가진 이들에게 성경은 닻을 제공합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더 은혜의 깊은 곳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 짧은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신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때문에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닙니다. 사람은 때문에사랑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릅니다. ‘임에도 불구하고사랑하십니다. 그러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좋아해 주십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은혜와 사랑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합당한 이유가 없으며, 무조건적이고,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 하나하나를 그런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속량하셨나니’(7:7-8)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사랑의 속성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었더라면 사도 요한은 성경을 기록하는데 더 많은 잉크를 들여야 했을 겁니다. ‘하나님은 가끔 사랑이시라또는 하나님은 내키실 때만 사랑이시라’ ‘날씨가 좋을 때만 사랑이시라고 썼을 겁니다. 상대의 행동이나 모습에 따라 변한다면 그건 인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것이 은혜입니다.   

깨달아 알게 하시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갓난아기를 입양하여 자녀로 양육하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여대생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반항하다가 가출했습니다. 딸을 찾아 헤매다가 그녀가 머무는 방에 들어가 보니 난장판이었습니다. 빈방의 흐트러진 모습에 마음 아파하는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청소를 깨끗하게 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쪽지를 붙여 놓았습니다. 나중에 딸은 엄마의 그 쪽지 편지를 보고 마음을 돌이켰다고 합니다. 쪽지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너는 내가 필요하지 않을지 모르나 나는 네가 필요하다.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한다. 매일 밤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와 다오.’ 낳지도 않은 자기를 이렇게 사랑하는 그 사랑은 보통 부모의 자식 사랑보다 더 큰 사랑임을 깨닫고 크게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결국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깨닫고 보니 내가 부족하기에 더 사랑받았고 내가 죄인이기에 더 사랑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알고 보니 죄인들의 괴수라고 고백한 바울은 하나님의 큰 은혜가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은혜를 누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주밖에 사모할 자 없나이다 고백하는 마음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은혜를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고 했습니다.   

오늘 시편 시인은 악인이 형통하는 모순된 현실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찬양대 대장 아삽의 시입니다. 시편37편에서도 같은 주제로 말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의 득세와 성공은 일시적일 뿐이고 종말시에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실현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미혹되거나 불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73편 시인은 시인이 목도하고 경험한 부조리와 신앙적인 갈등 속에서 진정으로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주권과 세상 끝에 행하실 심판에 대한 확신으로 현재의 갈등과 회의를 극복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갈등 즉 의인은 힘들고 고난당하고 악인은 형통하게 보이는 모순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절대 주권으로 다스리실 것을 믿는 신뢰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악인의 형통함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악인은 형통한데 의롭게 살고 있는 자신은 고난을 받고 있는 모순된 현실 때문에 깊은 시름에 빠졌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원망 불평의 죄를 짓지 않고 주 앞에 나아가 신앙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 시인의 고백입니다. 성소에서 이 모순된 현실의 문제를 묵상하는 가운데 마침내 의인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은 현 세상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나 세상 끝 날에는 궁극적으로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 외에 사모할 자가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여기서 시인은 신정론 문제에 대한 결론적인 대답으로서 주밖에 사모할 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즉 비록 악인이 일시적으로 형통하고 성공할 수 있으나 삶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기에 그의 삶은 미끄러운 곳에 발을 디딘 것처럼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참하게 미끌어져 버릴 것입니다. 반면 의인이 현 세상에서 때로 곤란을 받기도 하나 그는 하나님이 그 오른손을 붙들고 계시기에 그의 삶은 바위 위에 세워진 자처럼 견고하고 안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현 세상에서의 물질적 부요나 현세적인 번영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하나님만이 우리가 의지하고 사모할 구원자이십니다. 주 외에 누가 있으며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자 누구이겠습니까?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이 있는 현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겪는 갈등이 모순입니다. 이 같은 갈등과 부조리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합니까? ‘실로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으며 하나님만이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은혜를 기억하고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입니까? 요셉은 고백합니다. 형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려 하셨으니 형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형들과 가족들을 돌보리이다.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선으로 바꾸시는 은혜가 우리의 삶에 가득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합니다. 주를 멀리하는 자는 행악하는 자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자입니다. 주를 멀리하는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입니다. ‘27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입니다.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거한다는 것은 거기에 산다는 뜻입니다. 일단 자리를 잡으면, 날이 갈수록 주위 환경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얘기는 그 분의 사랑으로 집을 삼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역사를 거처로 삼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시는 능력의 하나님 엘로힘으로 시작해서(73:1) 주권자 아도나이 여호와 하나님(73:28)으로 끝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이 주권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주밖에 사모할 자 없나이다 고백하는 마음은 고난도 역경도 하나님의 은혜 선물로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도 바울은 핍박과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생각했습니다. 고난을 기뻐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철학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에 고난을 기뻐하는 게 가능합니까? 그런데 바울은 모든 것을 은혜로 알기에 고난도 기뻐할 대상이 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크게 받았기에 만에 하나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조그마한 희생이라도 드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주시는 은혜가 너무 커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이기에 고난도 유익이고 희생도 축복이고 환란도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난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는 강하게 나타납니다. 내가 받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고난도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하며 살게 됩니다. 고난을 통해 겸손해지고 고난을 통해 강해지고 고난을 통해 순수해지고 고난을 통해 진실해지고 고난을 통해 정결하게 된다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옥중에서 지내면서도 은혜를 느끼며 감동하고 있습니다.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808년 비엔나에서 대작 천지 창조가 연주 되었습니다. 작곡자 하이든도 참석했습니다. 늙고 병약한 하이든은 자기 의자를 잡아당길 힘도 없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감동 감격한 청중들이 모두 기립하여 박수와 환호를 하이든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엄청난 갈채입니다. 하이든은 그 환호와 갈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자세로 일어나서 큰 소리로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된 것이지 내 작품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고 앉다가 의자에 앉지 못하고 넘어져 기절했습니다. 결국 이 말이 하이든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감사가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의무로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마치 큰 아들이 집을 나가지는 않았지만 집안에서 잃어버린 아들이 된 것은 모든 것을 의무로 생각하고 했기 때문입니다. 보수라고 댓가라고 생각하면 은혜가 사라집니다. 모든 것을 은혜와 선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과 영광이 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이 감격과 이 은혜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창조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생산적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의 예측을 넘어섭니다. 이 귀한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를 아는 은혜 속에 거하십시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은혜입니다. 고난과 역경도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오직 은혜에 붙들려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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