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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19.10.27  
조회 : 28  
  본문말씀 : 창15:1-7, 롬1:16-17

종교개혁 502주년 되는 주일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이 한 구절의 말씀이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마틴 루터는 독일 사람으로서 아이슬레벤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루터가 법관이나 변호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청년 시절에 방학이 끝나고 비바람이 부는 날씨에 친구와 함께 기숙사로 돌아가다가 친구가 벼락을 맞았습니다. 그때 자신도 벼락에 맞아 죽을까봐 너무 겁이 나서 성 안나여, 저를 이 벼락에서 살려주시면 제가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약속하는 기도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수도사가 되면 독신생활로 혼자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꿈과는 가는 길이 너무 다르니까 아버지가 무척 서운해 하고 분노했던 것 같습니다. 또 아버지의 성격이 광부여서 그런지 굉장히 강했다고 합니다. 루터가 그런 회고를 했습니다. 제가 늘 주기도문을 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해야 하는데 주기도문을 할 때 아버지라는 이름만 나오면 그게 부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고 무서우니까 하나님 아버지도 무섭게 생각했고, 그래서 주기도문이 자연스럽지 않았다고 합니다. 참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죄 사함을 받는가? 어떻게 하면 의롭게 되나? 어떻게 하면 구원받는가?’ 이것을 가지고 그는 고민을 했습니다. 천주교회가 가르치는 구원의 길을 위해 고행 금식 순례 등을 했습니다. 층계를 오르내리며 입맞추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서도 이 문제를 갖고 계속 고민하였습니다. 대학 교수가 되었어도 계속 고민하며 비텐베르크 교회 탑 안에서 명상하던 중 본문 말씀인 로마서 117절을 갖고 깨달았습니다. ‘아하!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가 우리에게 전가되어서 우리에게 보혈의 피를 입혀 줘서 구원을 받는구나!’ 심판하는 하나님의 능동적인 의가 있지만 또 한편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수동적인 의가 있음을 깨닫고 구원의 기쁨과 확신을 얻었습니다. 후대 사람들은 루터의 이 체험을 탑의 체험이라고 합니다. 루터는 개혁이라든지, 역사 혁명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남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로워지는가 어떻게 하면 내 영혼이 구원받는가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다가 말씀 안에서 해결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구원받으려고 하는, 의로워지려고 하는 마음이었는데, 그게 왜 역사를 바꾸는 종교개혁으로 확장되었을까요? 우리가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개인의 죄사함 문제, 개인의 영혼 구원 문제는 루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도 되고 모든 인류의 문제가 됩니다. 그러니까 루터가 깨달은 이 구원의 문제가 역사의 문제로 확대될 수밖에 없었고, ‘종교개혁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루터가 묵상했던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 본문에 이후에는 아브람이 침략자인 메소포타미아 4개 연합군을 물리치고 조카 롯을 비롯한 사해 연안국가들의 포로를 구출한 후입니다. 아브람은 승리의 기쁨보다 적의 보복이 더 두려웠을 것입니다. 자식도 없고 적군의 보복이 두려워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기력이 쇠하였을 그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나님 자신이 방패시라고 큰 상급이시라고 합니다. 거듭된 하나님이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들이 없습니다. 후사가 없는 기업, 가나안은 무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이 문제제기를 합니다.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집안의 진실한 청지기 다메섹 출신인 종 엘리에셀을 후사로 삼는 게 최선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후사 문제도 거듭 언약으로 보장해 주시고 있습니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아브람이 씨가 기업이 될 것이고 셀 수 없는 별같이 많아지기도 하겠고 영광스럽게도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의로 여기심을 의미합니다.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여기 믿으니’(아만)라는 말은 계속해서 꾸준히 세우다, 신뢰하다의 뜻입니다. 어떤 대상에게 자신을 맡기고 끝까지 의지하려는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신앙은 일의 형편과 무관하게 무조건 그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믿으니 하나님께서 이를 의로 여기셨습니다. ‘’(체다카) 이는 생각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상태를 의라고 합니다. 즉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에게 완전한 의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로마서310절에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인간은 하나님의 구속 은총에 의해 칭의 곧 의롭다 여김을 받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23-24)’ 그러므로 인간의 입장에서는 의라는 단어 보다 칭의라는 단어가 더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의롭다 여김을 받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셨습니다. ‘여기시고’(헬라어로 로기조마이, 히브리어로 하솨브)전가하다’ ‘인정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런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담의 죄가 전 인류의 죄로 여겨진 것이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좋은 예입니다. 로마서5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4장에 아브라함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결국 죄인인 우리가 의인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의 의가 우리 죄인에게 온전한 모습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선언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참된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의 결과는 의로 여기심입니다. 깨끗하다 올바르다는 의미의 의는 죄로 인해 더럽혀짐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실 때에 한해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우리가 죄 있음에도 죄 없음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믿음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실 줄 믿습니다. 우리 믿음을 의로 여겨주심으로 우리는 살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선언하는 것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는다는 선언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문장마다 원문에 왜냐하면(가르)으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말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838절입니다.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누가복음9:26) 주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을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로마 사람들을 상대할 때에도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변방 식민지 유대지역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의 복음이지만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혜롭다고 자부한 로마인들은 복음을 미련한 것이라고 조롱하였으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진 구원으로 인도하는 생명적인 능력을 체험하고 잘 알고 있었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담대하게 전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2-24).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근본적인 원동력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믿음을 요구합니다. 복음을 믿는 결과는 구원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주는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거대한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라는 거대한 제국의 위용 앞에서 사도 바울은 굴하거나 비굴해 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란 근본적이고 인격적인 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을 구원합니다. 로마제국의 물리적 현상적 힘보다는 인생을 살리고 생명력을 더해 주고 인생을 바꾸는 힘이 복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살게 된 것입니다. 생명의 능력이 되는 하나님의 복음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헬라인에게 순차적으로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고 적용될 것입니다. 유대백성이 택함 받았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선교의 과제를 주실 때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전파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복음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의(디카이 오쉬네 데우)는 로마서의 주제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오르게 데우)와 대조되어 나타납니다. 인간의 본성적인 의나 율법을 행함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와는 다르게 하나님의 의는 세속에서 사용하는 처벌할 수 있는 죄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법정재판 개념의 의와는 다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의란 단순히 죄와 멀어진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멀어졌고 더 나아가 원수에게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능력과 성품을 하나님의 의라고 했습니다.   

‘23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2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그들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25 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아하 소원을 성취하였다 하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가 그를 삼켰다 말하지 못하게 하소서 26 나의 재난을 기뻐하는 자들이 함께 부끄러워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스스로 뽐내는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하게 하소서 27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28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시편35:23-28)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56:1)  

신약성경에서도 이 하나님의 의라는 단어는 죄의 세력을 멸하시고 인간을 의로 인도하시는 구원의 주체되시는 하나님의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구원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라는 말은 하나님 자신의 의이기도 하고 동시에 하나님께 속한 의로움에 근거하여 죄인들을 의롭다고 칭하시는 칭의의 개념을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감춰졌던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서 계속해서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의가 작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이 세상에서 계속해서 인간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의는 십자가에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가 담긴 복음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선언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터 당시에 로마 가톨릭의 구원관이 믿음이 아니고 행함이었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행함이 아니고 공로(merit)였습니다. 공로와 행함은 다릅니다. 로마 가톨릭은 건축헌금을 많이 하면 공로가 쌓인다고 했습니다. 10세기, 13세기 말 십자군전쟁 때에,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여하면 그게 공로로 참작되어 죄 사함 받고 천당 가는 데 유리하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지순례 가면 죄 사함 받고, 천당 가는데 많은 이익이 있다고 했습니다. 공로가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로가 창작이 되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면 성지순례 안 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특별히 그 당시에 교황을 너무 신성시했습니다. 교황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베드로의 후계자이고, 성경 해석의 최종 판결자도 되며, 기적이나 예언의 진위 여부도 판결해 냈습니다. 교황이 모든 일의 재판관이 되었습니다. 루터가 볼 때는 아니었습니다. 교황도 사람인데 왜 교황을 신성화하느냐 반문했습니다. 베드로 성당 건축 위한 모금으로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그래서 토론하자고 비텐베르크 교회정문에 대자보를 항의문을 붙인 것입니다. 15171031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종교개혁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십니다. 믿음으로(에크 피스테오스)믿음에서부터라고 읽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의가 주어지는 근원이 바로 믿음입니다. 앞에 나오는 믿음은 그리스도를 만나 고백하는 믿음이고 복음을 받아들여 기쁨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는 믿음입니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믿음은 믿음의 방향 즉 믿음을 가지게 된 성도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믿음의 상태를 의미하므로 앞의 믿음보다 더 성숙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성화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구원받는 믿음과 생활하는 믿음으로 구분 지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한 성도의 믿음의 시작과 성숙의 온 과정 전체를 주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원 얻는 믿음에서도 하나님의 의가 작동됩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믿음 또한 하나님의 의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는 전 과정에 나타납니다.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는 하박국2:1-4절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주장하는 구원의 도리를 확증함에 있어서 항상 구약을 인용합니다. 모든 믿음은 그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이루어집니다. 그의 믿음이든 나의 믿음이든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믿음(에무나)는 충실함 신실함 성실성을 의미합니다. 하박국에서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적극적인 신뢰를 의미했습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인용한 이유도 에무나 신뢰하는 믿음을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신뢰하는 믿음 에무나는 믿음의 주요 온전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신뢰입니다. 이 신뢰만이 의와 생명을 얻게 해줍니다. 신뢰하는 에무나의 신앙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죽음마저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어떤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믿음과 그 믿는 바에 내 생명을 걸고 의지하는 것이 에무나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살리라 (제세타이)는 말은 요한복음 316절 믿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라는 영생 단어와 같은 의미로 영육이 영광스런 상태로 영속적으로 존속하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는 믿음과 생활하는 믿음이 모두 이루어져 믿음으로 영원히 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을 의로 여겨주십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갈 것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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