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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20.01.19  
조회 : 72  
  본문말씀 : 신1:24-33,고후1:1-6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신명기 말씀은 출애굽 후 가데스 바네아 반역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의 사건이라면 가데스 바네아 반역사건은 인간의 불신앙 사건입니다. 출애굽 후 열하루 만에 도착한 가데스 바네아는 가나안 경계지역입니다. 정탐꾼을 파견하고 그 보고를 들은 후에 그 백성은 하나님을 배반하며 모세를 돌로 치려고 합니다. 이 반역 사건이 광야 40년 방황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여호수아 갈렙 빼고 나머지는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은 수일이면 끝낼 수 있는 여정을 38년간 광야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야 여정을 회고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하는 이유,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함이 가져다주는 축복, 그 반대였을 때의 저주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정탐꾼을 보낸 것은 잘한 것, 당연한 것 합리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사실은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행한 인간적 수단을 강구한 하나님 불신행위였습니다. 약속만 믿고 가면 되었습니다. 그 땅이 좋은지 안 좋은지 그 땅 백성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고 했습니다. 원주민의 키를 보고 놀랐습니다. 견고한 성읍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불신앙입니다. 반역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모두 광야에 묻으셨습니다. 그들의 통곡에도 귀 기울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40년이 지난 지금 이 시간 그들에게 가나안을 은혜로 주시려고 모압 평지에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로 살다가 해방되어 시내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통과한 광야는 사람이 발을 들여 놓으면 안 되는 죽음의 계곡이었습니다. 모세는 이곳을 크고 두려운 광야(1:19)’라고 했습니다. 물을 구하지 못해 원망했습니다. 며칠을 굶었는지 모르지만 배고파 아우성이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어 엉엉 우는 어린아이들, 픽픽 쓰러지는 짐승들, 게다가 며칠에 한 번씩 천막을 쳤다가 걷었다가 하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 했고 스트레스가 가장 높다는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이사를 계속해야 했고 단조로운 식단에 애굽의 가마솥 고기 국물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형편이었습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분쟁이 그치지 않고 불안하고 지루하고 짜증나는 곳이 광야였습니다. 죽지 못해 끌려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들이 걷는 이 광야 길에서 그 백성들이 발견하지 못한 하나님을 오늘 모세는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세나 백성이나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왔는데 백성들은 걷는 광야의 현상만을 보았고 모세는 그들이 볼 수 없었던 우리가 걷는 이 길에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같이 가셨는지를 고백하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하나님을 본 것입니까?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고백하고 새해로 넘어가고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가나안 정탐꾼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한마디로 이제 우린 죽음이다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하나님이 먼저 가시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의 하나님이란 말은 너희의 얼굴 앞에서 길을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걷는 이 길에 하나님은 먼저 가시는 분입니다. 앞장 서셨습니다. 광야 길에서 하나님은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앞장 서셨습니다. 길 잃지 않게 지시하셨습니다. 언제든지 우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 선행하시는 은혜로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저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한 번도 내가 먼저 가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은 제가 걷는 이 길에서 앞서서 먼저 가셨습니다. 마치 길을 찾아 가는데 골목 길 굽어지는 곳이나 갈림길에 주님이 서계신 것 같았습니다. 뒤 따라 오는 사람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항상 뒤 돌아보며 앞서서 가시는 안내자와 같습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133절에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길 그 자체이십니다. 걸음마다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광야는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 마음으로 걷는 성도 여러분의 삶의 여정에 하나님이 먼저 가시며 길을 지시하는 놀라운 은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앞서 먼저 가시며 길을 지시하시는 안내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안내 받는 2020년 새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완고한 바로 왕과 10번의 재앙으로 싸우셨습니다. 쫓아오는 애굽 군사를 홍해에 수장시키셨습니다. 헷 족속, 기르가스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 등 이스라엘보다 더 많고 힘이 센 가나안 일곱 족속을 싸워 쫓아내신 하나님이십니다(7:1).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셨습니다. 아말렉이 공격해 올 때에 그 전투에서 싸워 이기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 손을 들면 여호수아 군대가 이기고 피곤하여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해가 지도록 손이 내려오지 않게 아론과 훌이 보좌하자 드디어 승리했습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 나의 깃발이라고 고백하며 대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말렉과 싸우시리라(17:16)고 하셨습니다. 적군과 싸워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광야의 사나운 들짐승과도 싸워 승리하셨으며 그렇게 그 백성을 보호하시고 방어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정탐한 지역 아모리 족속의 산지 골짜기, 에스겔 골짜기입니다. 헤브론 북쪽 3.2km지점입니다. 비옥한 골짜기입니다. 에스겔이란 말은 꽃이나 과일의 큰 다발’ ‘큰 송이라는 뜻입니다. 그 땅의 포도송이는 혼자 옮기기 어려웠습니다. 막대기에 꿰어 둘이 메고 왔습니다. 포도뿐만 아니라 석류와 무화과도 가지고 왔습니다. 그 땅이 좋았으나 그 땅 백성은 아모리 족속으로 가나안 족속 중에 가장 강한 족속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은 그 땅으로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현시적으로 실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불신앙적 행위가 계속되었습니다. 약속으로, 은혜로,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으로 주어진 가나안 땅 정복을 멈추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불신앙과 두려움은 사촌간입니다. 장막 중에서 하루 종일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백성은 키가 크고 성읍은 견고하고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두렵고 두렵다 보니 상대는 더 커 보이는 것입니다. 아낙 자손은 힘이 세고 키가 큰 용사들로 고대 사회의 폭력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싸우십니다. 신앙인의 영적인 전투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 그 전투의 주관자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순례에서의 전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지휘관이 되셔서 치르는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승리를 이미 결정해 놓으시고 전쟁을 치르십니다. 우리 위해 싸워주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은 죄와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유혹과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의 교만을 꺾고 겸손으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병마와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암병과 씨름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골수를 윤택하게 하시는 은혜로 항암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위해 싸워주시는 하나님은 모든 거짓과 불의와 싸워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진실이 이깁니다. 하나님은 자유의 권능이 승리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안아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부모가 갖는 자식에 대한 사랑에 비유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각별한 보호의 은총과 사랑을 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나의 걷는 이 길에서 하나님은 나를 안고 계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 여정을 돌아볼 때 안아주시는 아버지 품, 안아 주시는 아버지의 은혜라는 말을 빼놓고는 지나온 길을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안아 주심은 안긴 자에게 위로입니다. 큰 힘과 용기입니다. 보호해주시는 하나님, 안아 건너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품에 안다는 것은 들어 올리다, 짐을 지다, 어린이를 업고 데려간다는 뜻입니다. 독수리 날개로 업어 나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32:11). 채워주시고 보호하시고 안아주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문제가 가득했던 고린도 교회에 먼저 편지를 보냈으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는 비보를 듣고 3차 전도여행을 중단하고 고린도를 방문했습니다. ‘가슴 아픈 방문이었습니다. 장기 체류하지 못하고 에베소로 복귀한 바울은 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눈물의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은 자신의 편지를 가지고 고린도에 갔던 디도를 마게도냐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디도로부터 일부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권과 사도로서의 사역의 진실성까지 불신하며 과오를 돌이키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린도후서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서신 자체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사도의 사역본질을 변증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체험한 큰 환란 중에서도 도우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이제 다시 위로를 받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고난과 위로를 받은 것처럼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고난과 위로를 참여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품어주시고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위로하다(파라클레시스)는 말은 부르다, 곁으로 오게 하다, 권면하다, 용기를 북돋우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낙담, 환란 상태의 심령에 격려와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찾아가셔서 안위와 소망과 기쁨과 평강을 주십니다. 환란에서 구원해주십니다. 3-6절 사이에 위로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만큼 바울은 하나님의 위로를 깊이 체험했던 것입니다. 위로하다의 명사형은 파라클레토스로 성령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보혜사입니다. 위로자, 돕는 자, 변호자이신 하나님을 보여준 것입니다. 환란을 당할수록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크다는 것을 바울은 경험했습니다. 환란을 당할수록 하나님께서 큰 위로를 아끼지 않으시는데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야말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고난을 이겨갈 힘이고 용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 여러분을 안아주시며 위로해주십니다.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위로하시고 힘주시고 안아주시는 하나님을 인하여 능히 이겨낼 수 있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너무 힘들어요! 하고 주님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나도 안다. 힘들지 내가 안아 주마. 내가 위로해 주마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아버지를 떠나 허랑방탕한 삶을 살다 돌아온 아들을 향해 먼저 달려가 목을 얼싸 안는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 장면에서 두 눈물이 있었습니다. 회개한 아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보다 돌아 온 아들을 품에 안은 아버지의 사랑의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더 뜨거운 눈물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안고 흑흑 느끼며 울고 계신 아버지의 심장은 폭발직전이었을 것입니다. 그 가슴에 안긴 아들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아버지의 눈물은 돌아온 아들에게 새 삶을 주는 눈물이었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안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광야길 가운데 자기 백성을 품에 안으시고 자상한 아버지로서 백성을 보호해주시고 공급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확신 때문에 백성이 아무리 불평을 해도 안아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사랑하고 신뢰하였습니다. 그렇게 40년이 흘렀고 신명기 32장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하는 설교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그는 내 아버지시요(32:6)’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자비로우신 아버지, 내가 기대고 안길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지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길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미지의 길입니다. 옥스 포드 대학의 맥그래스교수가 내 평생에 가는 길이라는 책에서 인생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짧고 상쾌한 산책인줄 알았던 것이 마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마라톤으로 바뀐 것과 같다.’ 어린 시절 철없이 즐거워 짧은 상쾌한 산책인줄 알았는데 좀 더 커 보니 미처 준비가 안 된 채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마라톤을 달리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탈락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는 인생길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길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안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누군가에게 안긴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메마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안긴다는 것은 온 몸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행위입니다.   

사람은 안기면 건강해집니다. 안기면 힘을 얻습니다. 용기가 생기고 위로가 됩니다. 속사람이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안아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안아 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당당하고 문제를 극복하고 주님의 자녀로 강건하게 살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안아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아 주시는 아버지로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를 안아주시는 분이시다. 나는 하나님 품에 있는 자녀이다. 하나님이 나를 안고서 인도 하실 거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안아 주신 자녀처럼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안아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에 하나님은 앞 서 가십니다.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안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지시하심, 싸워주심, 안아주심을 경험하며 승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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