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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20.02.02  
조회 : 47  
  본문말씀 : 시 119:65-72, 히 12:6-13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율법시로 알려진 시편 119편 오늘 본문은 아홉 번째 연입니다. 고난을 통해 깨닫게 된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시인입니다. 그는 성숙하고 열심 있는 신앙을 보여주며 고난에 대한 새로운 눈을 열어 줍니다. 고난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얻게 되는 주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확신이 그 어떤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우월하다는 것을 자신 있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 번 말씀 하시고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하신 대로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떠나지 않고 주님을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66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명철(타암)은 본래 맛을 분별해 내는 미각을 가리키던 말이 점차 어떤 사물이나 행위의 가치를 판단하는 분별력이나 이해력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습니다. 지식(다아트)는 어떠한 사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확실하게 지킬 수 있도록 주변 상황을 잘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과 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시대를 분별하는 신앙의 눈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시인은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했다고 하면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대체적으로 믿음을 연단하시거나 죄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이러한 고난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고난의 유익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환란과 고난의 어려움 앞에서 실족하는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고난을 자기의 유익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믿습니다. 고난을 당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는 먼저 자신을 돌이켜 보고 잘못이 있으면 속히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이러한 고난에 대한 자세는 그 사람의 믿음을 더욱 성장시키고 성숙시킬 뿐만 아니라 결국 고난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본문의 시인은 후자에 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셨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부정적으로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함에 인도하시기 위하여, 즉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기 위해 고난을 이용하십니다. 고난이라는 징계로 교육하십니다.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시기 위해 목적지가 있고 목표점이 있기에 우리를 징계하시고 훈련하시고 교육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신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당시 박해와 고난이 계속되면서 생긴 권태와 우유부단의 상황에 직면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님을 진지하게 뒤따를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자기에게 내리기로 된 축복을 스스로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는 히브리서 11에 나오는 믿음의 증인들에 대조되는 반대 인물입니다. 에서는 세상의 썩어 없어질 물건을 얻기 위하여 하늘의 축복 곧 영원한 구원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부르심을 저버리면 하나님의 은혜를 소홀히 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식에게 훈육하지 않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이기에 징계하고 고난을 주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매를 든 아버지는 가까이 계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진실이 상실되었습니다. 패거리 문화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이 혼돈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안 폐렴이라는 공포스런 전염병이 퍼지고 있는 이 고난의 시절에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고난을 통해 가르치시고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난과 역경조차도 하나님의 도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하는 자녀를 바르게 하시기 위한 아버지 하나님의 징계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 왕의 말년에 모두가 반대하는 인구 조사를 실시합니다. 하지 말자는 요압 장군을 재촉해서 결국 인구 조사를 했습니다. 내 실력 내 영향력 내 나라의 역량을 조사하고자 한 것입니다. 교만한 짓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다는 시편 본문의 내용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진노하시며 선지자 갓을 통해 세 가지 벌 중에 하나를 택하고 하십니다. 7년 가뭄이 들게 하랴? 석 달 동안 전에처럼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게 하랴? 아니면 3일 동안 전염병을 돌게 하랴? 다윗왕은 3일 동안 전염병을 선택합니다.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3일간의 전염병으로 7만 명이 죽었습니다(삼하24:12-15).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불신앙으로 사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내린 것입니다. 경외신앙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교육적인 조치인 징계와 꾸지람도 사랑의 표라고 믿으면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12장에서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며 완전함과 거룩함에 참예케 하시려고 고난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훈련으로서의 고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래서 고난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매 맞고 고단하고 고생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자신의 육체의 가시, 사단의 가시가 떠나가기를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네가 약할 그때에 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 믿으면 고난은 다 사라져야 하고 신앙과 고난은 반대말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기복신앙입니다. 예수 믿으면 3년 안에 부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잘못 믿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부끄러워 숨기려하고 벗어나려고 합니다.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그 고난이 유익하는 것이 될 수 있고 무익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고난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체념 가운데 고난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습니다. 체념은 고난에 순응해 가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고난을 통한 자기 개선이나 삶의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도피적이 될 수도 있고 자기 상실과 연민 가운데 고난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습니다. 비참하게 슬픔에 잠겨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스스로를 파멸의 웅덩이로 몰아넣게 되어 결국 우울증이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고난을 신이 주는 형벌로 받아들이기에 그 노여움을 풀기 위해 많은 제물을 바치는 태도도 있습니다. 고난에 대한 이상과 같은 태도는 다 바람직하지가 않습니다. 부정적이고 자기 파괴적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가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여호와의 훈련으로 여기는 것은 구약 잠언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3:11-12)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일수록 자식을 훈련하고 징계합니다. 징계(파이데이아스)는 어린이(파이스)를 훈련시킨다 훈계한다 교훈한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훈계하고 징계하는 것은 그 자식이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식을 훈계하지 않는 부모가 있다면 자기 자식이 아니거나 무능한 부모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과 역경으로 그의 사랑하시는 백성을 훈련하십니다. 아들이 어렸을 적에 밖에서 친구들한테 배운 말을 하면 야단을 쳤습니다. ‘존나라는 말을 얼마나 하는지 모릅니다.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남의 집 아이를 때린 적이 없습니다. 절대로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내 아들에게는 야구 방망이로 때렸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23:10). 말하며 때렸습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조차도 하나님의 선하심의 발로입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주님의 징계는 그 백성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고난을 통해 훈련시키시는 목적, 즉 고난의 목적이 있습니다. 과연 고난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삶이 보다 가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본문 히브리서 1210절에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익을 위하여라 함은 참되고 진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요셉은 어린 시절 자신이 존경받는 꿈을 꾸었지만 실제의 삶은 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가 종살이 옥살이 고생살이 타향살이를 하였습니다. 그 모든 고난은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더욱더 가치 있는 생을 살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인의 생명을 구하게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원기 왕성한 40세에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40년 미디안 광야 생활 후인 80세에 부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8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가장 선하게 역사하시기 위해 고난을 주시고 징계를 주십니다.     

탈무드에서 랍비 아키바는 예수 믿는다는 죄목으로 동네에서 쫓겨나 유리하며 방황하였습니다. 그의 소유는 성경한권, 성경읽기 위한 초한자루, 새벽 기도 시간을 알려줄 수탉 한 마리, 타고 다닐 나귀가 전부였습니다. 어느 마을에 이르러 재워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고 무정한 세상이군,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테지하고 촛불 켜고 성경을 읽으려는데 바람이 불어와 꺼지자 무정한 바람이군그리고 그 냥 잠을 청합니다. 그 밤에 이리떼가 수탉을 죽이고 맹수가 나타나 나귀를 죽입니다. 소유다 잃고 성경도 읽을 수 없고, 시간도 알 수 없고 여행도 할 수 없고 정말 절망적이었습니다. 다음날 동네에 들어가 보니 마을 전체가 떼강도에게 다 털리고 마을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아키바는 나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사랑,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잠을 안 재워준다고 무정한 마을이라고 했지만 거기서 잤으면 자신도 죽었을 것이고, 촛불 보이고 닭이나, 나귀 소리가 났으면 나도 죽었을 터인데 나중에 보니 그 모든 것들이 내게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기 위해 큰 축복을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려고 이런 문제를 주시는구나 감사하면서 주의 길을 걷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12:10).  

하나님은 절대 거룩한 분이시고 반면에 우린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입니다. 죄의 문제는 두가지로 해결됩니다. 죄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면 해결됩니다. 또 하나는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해결책이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이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 용서 받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비할 때 우리는 여전히 불순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만 아집 욕심 미움 시기 질투 다툼 죄의 충동, 부정한 의식이 그대로 섞여 있습니다. 이런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고난이란 용광로를 사용하여 불순한 것을 뽑아내고, 깨끗하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순결하고 거룩하심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편안 할 때는 몰랐던 일들을 고난의 시간에 알게 해주십니다. 은혜인줄 몰랐던 것들이 은혜임을 알게 해 주십니다. 천식을 앓던 교우의 고백입니다. 평상시에 숨 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감사한지도 몰랐는데 병에 들고 보니 숨을 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냥 숨만 쉬는 것도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가를 깨닫고 그동안 감사하지 못한 무지함과 교만함을 회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늘 궁금하게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얻어맞고 나서야 거룩해지는 걸까요? 왜 꼭 고난을 통과하고 나서야 은혜를 아는 걸까요? 하나님의 태클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미리 거룩하게 살 수는 없는 걸까요? 성도 여러분은 그 답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교육, 하나님의 태클이 들어가기 전 거룩하게 사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기억하고 분노하지 마십시오. 귀히 여기십시오. 징계가 복임을 알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징계 속에 나타난 주님의 깊은 사랑을 알아차리십시오. 고난을 통해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에 돌아옵니다. 씻어야 할 얼룩을 그대로 놓아두시지 않고 고난이라는 훈련과정을 통해 그것들을 씻어내십니다. 요즘은 세탁기의 일입니다만 아주 어렸을 적에 어머니를 따라 따뜻한 샘물이 나오는 빨래터에서 빨래하시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얼룩이 있는 옷은 여지없이 방망이로 두들겨 맞고 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빨래를 때립니까? 스트레스 풀기 위함입니까? 깨끗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심령은 그 거룩함의 고귀성과 아름다움 때문에 언제나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 것은 성결해야 할 백성이 성결하지 못하기에 징계하십니다. 거룩해야 할 백성이 거룩을 훼손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할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기에 하나님은 고난의 막대기로 그 백성을 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보존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백성이 징계의 과정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더욱 성화되어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징계는 교정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로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의인의 영적 지위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인격 자체가 의인이 된 것이 아니기에 실수도 하고 연약하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아버지가 자식을 교정시키듯이 성도를 교정시키시려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징계와 징벌을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벌이 아니라 징계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결국 우리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인내함으로 신앙 성숙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없는 것 보다 남은 것이 더 많고 잃은 것 보다 받은 것이 더 많음을 기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더러운 인간적인 것들이 사라지고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 받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의 훈련은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기 위한 온전한 복종을 위함입니다.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한 번의 순종은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온전한 순종은 상황을 바꾸어 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 고난을 통한 훈련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한 복종을 가져옵니다. 우리 삶의 비극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시면서 온전한 복종의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2:8-9). 모든 무릎을 그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고난의 훈련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줍니다. 좌절을 줍니다. 고통을 줍니다. 그때 마다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더욱 주님을 향해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능력의 주를 바라 보아라 힘이 없고 내 마음 연약할 때 위로의 주님 바라 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주님을 봅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섭니다. 반드시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 영광은 하나님의 훈련을 통과하는 자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은 저주 형벌 체념 운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훈련입니다. 고난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가치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훈련은 질병, 실패, 역경, 고통, 슬픔과 같은 현실적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도피하거나 체념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난이 성도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구원의 소망에 이르는 인내와 연단을 주며(5:3) 하나님의 영광에 기쁨으로 참예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벧전4:13). 우리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복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더욱 복종하여 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난당함이 내게 유익이라 고백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고난이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목적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고난을 만나고 있던지 고난을 당할 때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유익하게 하시고 영혼을 정화하여 거룩하게 하시고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도록 복종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훈련이며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임을 믿고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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