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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강하고 담대하라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20.03.22  
조회 : 137  
  본문말씀 : 시31:9-24,빌1:12-21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전 세계적인 비상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7세 고등학생도 엄마, 나 아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건강을 위해 여전히 위생을 조심하여 손을 자주 씻으시고 마스크 꼭 하시기 바랍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속히 우한 폐렴을 일으키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생각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다윗 왕이 금반지를 꼭 갖고 싶어 했습니다. 금세공업자에게 금반지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반지에 자신이 가장 성공했을 때에 교만하지 않도록 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주눅 들거나 절망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문구를 적어 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금세공업자는 그런 문구를 찾기 위해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묻고 애를 썼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지혜 있는 솔로몬에게 묻기로 했습니다. 성공했을 때에 교만하지 않고, 힘들고 어려울 때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문구가 무엇일까요? 솔로몬이 대답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요즈음 이런 구절을 묵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편31편은 다윗의 비탄시입니다. 비탄시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호소와 간구와 찬양입니다. 사울의 추격이 계속 됩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피해야 합니다. 한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극한 한계상황에서 비탄 기도시를 기록했습니다. ‘9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좌절과 불평만을 표출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신뢰 위에 올곧게 서서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호소합니다. ‘나를 건져 주소서’ ‘나를 구원 하소서간구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를 들으시고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하며 찬양하는 선취적인 신앙 곧 여호와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선취적인 신앙은 어떤 것을 미리 취하는 신앙입니다. 어떤 일이 현실적으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가올 미래에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에 찬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직 고난의 상황이 종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미 구원받은 것처럼 벅찬 감격으로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찬양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백성을 향하여 그러한 구원을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에게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선취적인 신앙을 보여준 사람들이 많습니다. 노아는 보지 못한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했습니다(11:7).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11:8). 요셉은 후손들이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을 믿고 미리 자신의 유골을 들고 나가라고 했습니다(50:24). 모세는 광야로 나아갔고(2:15,11:27) 라합은 정탐군을 숨겨줬습니다(2:4,11:30). 다니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바벨론 왕의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1:8). 선취적인 신앙입니다. 다윗의 한계 상황을 다윗 자신이 죽은 자’ ‘깨어진 그릇’(31:12)이라고 했습니다. 한계 상황 속에서 다윗은 자신이 평소에 가졌던 여호와 중심 신앙을 다짐하며 나의 영혼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5)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15)라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19절로 24절에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선취적인 신앙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끝 절에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고 가슴 벅찬 외침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의 외침은 그런 한계 상황에서 한 것이기에 듣는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으나 빌립보 교우들에게 기뻐하라고 합니다. 로마에 처음 갔을 때 바울은 가택 연금 상태였습니다. 비교적 자유롭게 성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위대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아주 불편한 상황이었습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대적자들은 무시하고 조롱했습니다.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 조차도 이들그들로 나뉘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시기하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자신이 시위대 감옥에 갇힌 것을 본문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참된 용기는 내적인 양심으로부터 성원을 받으며 의와 선과 진리 편에 설 때에 가질 수 있는 도덕적 용기입니다. 가난해도 양심의 꺼리낌이 없으면 용기 있게 견딜 수 있습니다.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줄 아는데 있습니다. 즉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용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마음에 근거합니다. 이 신앙의 용기는 절대적인 용기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이 신앙은 과연 어디에 근거를 두는 것입니까? 이 사순절에 담대함의 신앙으로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강하고 담대하라 이 신앙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즉 강하고 담대함은 우리의 출처를 분명히 아는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용기가 참된 용기입니다. 다윗의 담대함은 그가 자신의 출처를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은 대단한 군인입니다. 홍안의 소년 다윗이 넘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출처가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강하고 담대함의 신앙을 가진 다윗은 골리앗 앞에 당당히 섰습니다. 너는 칼과 단창을 의지하여 나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나의 출처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목동의 일을 할 때 힘주시고 사자의 입에서 이리에게서 양을 구원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었기에 담대함의 신앙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였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었기에 담대함으로 골리앗 앞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자신의 출처를 아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를 알 때에 담대함의 신앙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투옥이 복음의 패배인 것처럼 염려하고 근심하는 빌립보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강하고 담대하길 바라면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자신이 투옥된 것이 도리어 복음 전파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피력하였습니다. 옥에 갇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한쪽에서는 투기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 동기야 어떻든지 결국 전파되는 것은 주님의 복음이므로 자신은 기뻐할 뿐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복음전파의 출처는 오직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누구와 관계 맺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담대함의 신앙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용기이며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출처를 아는 데서 오는 용기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하심으로 구속함을 받은 데서 얻어지는 절대적 은총적인 용기입니다. 자신의 출처는 분명히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자에게 주어지는 믿음의 용기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짐으로 어떤 환경과 형편이든지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고 하는 담대함의 신앙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강하고 담대하라 이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의 끈에 연결되어 있을 때 가능합니다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다윗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합니다. 빌립보서에서 사도 바울의 진정한 용기와 담대한 신앙을 보게 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1:20)’ 여기 담대하다는 헬라어는 παρρησία(팔레시아)라고 하는데, 담력, 용기, 담대함과 용기를 의미합니다. 이 용기들을 영어 성경엔 충만한 용기(full courage)라고 했습니다. 충만한 용기, 꽉 들어 찬 튼튼한 용기입니다. 그러면 이런 용기는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겠습니까? 담대함의 신앙은 어디에 근거하는 것입니까? 담대함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참된 용기는 진정한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를 세상에 주시는 용기로 나타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기에 아무 곳에서나 자기의 가슴을 열어 젖을 먹일 수 있습니다. 두려움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죽음과 죄가 깔려 있습니다. 그 두려움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극복하게 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용기를 포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용기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들어납니다. 강도가 출몰하는 현장에서 그 강도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는 마음이 도적의 위협과 공포를 무릅쓰고 선을 행하게 한 것입니다.  

진정한 용기의 사람은 뜨거운 사랑이 있어서 이것을 위해서라면 이제 죽어도 좋다고 말 할 수 있는 그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살아도 좋고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고 하는 담대함의 신앙을 간직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를 주시지 않겠느뇨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란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투옥되어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사나죽으나 주의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참으로 담대한 신앙을 소유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강하고 담대하라 이 신앙은 주님의 뜻에 근거할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 신앙은 우리가 어디에 쓰임 받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 즉 용처를 아는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려움의 배후에 깔린 죽음을 이기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생의 목적, 생사가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확실한 목적이 있었기에 그는 담대함의 신앙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게 하려 하였고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살아도 죽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그 가운데 담대함의 신앙이 깃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하는 데서 담대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 그 복음전파가 자신의 용처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데서 담대함의 신앙이 생깁니다. 담대함의 신앙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에 근거합니다. 참된 용기는 기쁨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슬퍼하는 자에게는 용기가 없습니다. 용기는 충만한 기쁨에 있습니다. 그 기쁨은 어떤 기쁨인가요? 복음이 확장되는 것에 대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인간의 평판이나 인기, 칭찬과 존경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런 것에 근거를 두고 사는 것만큼 피곤한 일은 없습니다. 바울은 인기관리, 평판이나 존경에 신경 쓰지 않았고 오직 그리스도만 전파되면 그만이요 그리스도의 이름만 높아지면 만족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만 존귀히 여김 받으면 행복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런 사랑과 충성이 그로 하여금 기쁘게 하고 그 기쁨에 근거하여 용기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담대함의 신앙을 보여준 것입니다.   

바울은 달려 갈 길을 다 마치고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음을 확신하고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용기는 언약 성취에 대한 소망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는 확신 속에 담대함의 신앙이 깃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는 것 거기에 우리의 담대함이 가능합니다. 담대함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618년에서 1648년까지 30년간 독일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이른바 30년 전쟁입니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독일은 온통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더하여 전쟁 직후에 흑사병이 창궐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1,600만 명이던 독일 인구 중 무려 1,000만 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상황이 빚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전쟁에 개입해 승리를 이끌었던 프랑스는 천주교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개신교도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치열한 격전지이었던 실레지아라는 곳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의 주민이 종교개혁 이전의 천주교로 돌아 가버렸습니다.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molk, 1672-1737)라는 개신교 목사가 그곳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는 종탑도 없어졌고 그저 통나무와 흙벽으로 된 예배당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담당하는 교구는 주변의 36개 마을이나 되었습니다. 천주교의 박해가 심해 종탑도 세울 수 없었고 심지어는 장례식도 허락을 맡아야만 치를 수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벤자민 슈몰크 목사 부부는 실망하지 않고 선교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다 벤자민 슈몰크 목사는 과로로 자주 쓰러졌고 급기야는 30대 초반에 중풍에 백내장까지 겹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풍으로 인해 절룩거리고 눈까지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선교 정열은 식지 아니하여 36개 마을을 빠짐없이 심방하며 다녔습니다. 이를 보고 많은 교인들이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704년 슈몰크 목사가 32세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슈몰크 목사는 언제나처럼 아픈 몸을 이끌고 여러 지역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통나무로 지은 목사의 사택이 불에 타버렸기 때문입니다. 뿐 아니라 두 아들이 부둥켜안은 모습으로 잿더미 속에서 타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슈몰크 목사 내외는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지만 슈몰크 목사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내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절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찬송가 549장의 가사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14:8) 생사를 맡기고 주님의 뜻에 따르는 담대함의 신앙을 세워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담대함의 신앙! 신앙의 용기! 여호와 신앙!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필수 요건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뜻을 확신 하는 가운데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여 강하고 담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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