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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십자가 하나님의 사랑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20.04.05  
조회 : 79  
  본문말씀 : 호6:1-3,요3:16-21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 여러분에게 십자가 구속의 은혜와 성령의 이끄심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많은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는 가운데 어린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종려주일입니다. ‘호산나 지금 구하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팬데믹 코로나 바이러스 재난의 시기에 우리가 외쳐야 할 고백이기도 합니다. 지금 구하소서 호산나! 다윗의 아들 주 예수여! 예수님은 무리의 외치는 소리를 들으시며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찾는 순례자들이 마지막 넘어야 하는 산이 감람산입니다. 감람산은 해발 700미터의 예루살렘 보다 110미터 더 높은 산입니다. 감람산 정상에 서면 순례자들은 두 가지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는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을 수 있고 또 하나는 찬란한 예루살렘 성을 눈앞에 환히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여 고난의 한 주간,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을 지내시며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인 부활주일에 부활하십니다. 이 종려주일을 고난주일이라고도 부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향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를 바라보고 붙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요한복음 3장은 중생의 본질을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 알려주신 주님께서 중생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먼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그리스도께서 구속사역의 성취를 위해 십자가 수난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도들이 이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역사를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역사를 믿는 자들이 받을 영생의 축복과 믿지 않는 자들이 받을 저주를 가르쳐 주고 중생 거듭남과 믿음 그리고 믿음의 결과를 하나씩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어 있어서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의를 행할 수 없는 전적인 무능 전적 부패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십자가를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의 십자가 구속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초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 볼 때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총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받곤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관심하는 십자가가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무서운 형틀이었고 사형 도구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한 때 수치와 저주의 상징이었고 만인의 외면을 받아 왔습니다. 집안에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최고의 모멸과 수치였던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도 잠시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정도였지만 그의 가문에서는 십자가를 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수치로 여겼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후 이 십자가는 수치와 저주의 상징이거나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영생과 영광과 구원의 상징으로 변했습니다. 십자가는 옛사람을 새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전환점입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두개의 막대기둥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자랑이었고 바라볼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를 믿는 자가 영생을 얻습니다. 고난주일 갈보리 산상에 세워진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자기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Even the Cross), 십자가와 함께(With the Cross), 십자가 안에서 (In the Cross)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6:14)’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두 개의 자랑이 두 개의 왕국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지상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과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 십자가를 자랑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는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성경구절은 성경전체의 핵심입니다. 마틴 루터는 작은 복음’(little Gospel)이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복음서들 속에 있는 복음’(the Gospel within the Gospels)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상(코스몬)은 유대인들과 이방인 전부를 포함하는 인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유대인에게 국한되지 않습니다. 모든 인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본문의 사랑(에가페센)은 희생적 사랑 아가페의 동사형으로 가장 숭고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마저 내놓으시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연약성과 죄성을 끝없이 참으시는 자기희생적인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를 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절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독특한 관계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로서 동일한 신적인 속성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멸망한다는 것은 완전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정죄로써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생은 멸망의 반대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완전하고 영원한 삶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영생은 독생자로 오신 오직 그리스도(solux Xristus)에 대한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하나님 자신을 죽음의 자리에 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찰스 웨슬리는 일찍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놀라워라. 그 사랑!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위하여 죽으셨나요?’ 결국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놓으신 것은 당신의 아들을 내어 놓으신 것이며, 하나님 자신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군대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을 침략했을 때, 종교재판소가 사용하던 감방 문이 열렸습니다. 종교재판의 희생자 중에는 기독교인이 많았는데 한 지하 감방에 갇혔던 기독교인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쇠사슬이 채워진 그의 시신은 이미 썩어질 대로 썩어져 고통스러운 죽음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갇혔던 좁은 감방 벽에 새겨놓은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 십자가는 네 마디의 스페인어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십자가 위에는 높이십자가 밑에는 깊이’, 왼쪽에는 '넓이오른쪽에는 길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도 이 사람은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증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같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통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층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7-19).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사랑입니다. 구원입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그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감격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상처 난 하나님의 가슴을 십자가에서 발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여건이 좀 더 나으면 사랑하고 좀 더 깨끗해지면 사랑하고 더 의로워지면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 대상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창조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창조적인 사랑입니다. 사랑할만하니 사랑하고 사랑받을만한 존재가 되었으니 사랑한다는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일방적이요 절대적이요 창조적이며 효과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는 놀랍습니다. 십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에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믿는다는 말은 곧 사랑을 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 사랑을 믿게 하고 알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어느 농장에 병아리가 병들었습니다. 수의사가 와서 진단하고 하는 말이 어미 닭을 푹 삶아 먹여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어미닭을 죽일 주인이 있겠습니까? 심지어는 농장주인의 아들을 죽여야한다고 하면 그렇게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병아리보다 못한, 벌레 같은 나를 살리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 볼 때마다 이만큼하시며 팔을 벌리시는 주님의 사랑을 만나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이 우리 속에 역사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만큼하고 팔을 벌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밝히 보이시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를 믿고 구원을 얻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합니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세아의 핵심 주제는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교만하여 범한 종교적 죄로 인해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여호와만이 유일하고 절대적 하나님이심을 알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행하는 죄는 마워하시고 반드시 벌하면서도 인간 자체를 측은히 여기시고 끝까지 사죄의 기회를 주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속사의 출발이고 원동력입니다. 징계를 받는 중에 비로소 그들의 병과 상처를 치유하실 참 의원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를 찢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백성들을 곳곳에 포로로 흩어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앗수르와 바벨론을 이용하셔서 자기 백성을 멸망시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이 자신들의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구원을 얻습니다. 치료해 주십니다. 살게 해 주십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 구원은 멸망의 위기에서 구출해 주는 것입니다.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 분리되어 멸망에 처하게 된 자들에게 다시 살 수 있는 자격을 허락하십니다. 유일하게 주어진 용서와 구원의 기회와 방법은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믿어야 합니다.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참 빛이신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단절의 어두움에서 참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어두움에 머물기를 더 좋아하는 데서부터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는 우리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나의 죄 값이 얼마나 큰가를 봅니다. 우리의 죄를 그대로 두고서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가 없기에 그 죄 값을 우리 주님이 치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우리는 나의 죄를 보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지은 죄에 대한 대가입니다. 마치 노예가 자유를 얻으려면 그 몸값을 치러야 하듯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자유하려면 누군가가 나의 죄 값을 치러 줄 때 비로소 자유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값을 치르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키며 보라 세상 죄 짐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1:29)’고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 죄 값입니다. 내 죄가 이다지도 크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보면 내 죄 값이 보이지 않습니까? 십자가를 볼 때 나의 죄 값을 봅니다. 나의 지독한 죄 값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나에게 회개를 불러일으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전환점(turning point)입니다. 죄 값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새 생명의 역사, 구원의 축복이 깃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내 죄의 무게를 발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는 내가 지고 가야할 십자가입니다. 내가 살아내야 할 십자가입니다.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십자가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을 사랑하여 빛으로 오고 빛은 그들이 지고 있는 십자가를 비추어 줍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숙제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천국을 탐내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위로를 바라는 사람은 많지만 그 분과 함께 고난을 받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분과 함께 만찬 식탁에는 나아가려고 하지만 그 분과 함께 금식하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누구나 다 예수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고자 하나 그 분을 위해서 그 분과 함께 고통을 참으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떡을 나누어 주는 그 분을 따르는 사람은 많으나 그 분의 고난의 잔을 마시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11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가를 지겠다는 결단을 감행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참 이상합니다. 지는 자에게는 가벼워지고 피하는 자에게는 점점 무거워집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내가 죽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그 십자가를 지는 것을 왜 겁내고 있습니까? 십자가에는 구원이 있고, 십자가에는 생명이 있고, 십자가에는 원수를 막는 힘이 있고, 십자가에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담겨 있고, 십자가에는 영혼의 즐거움이 있고, 십자가에는 덕의 극치가 있고, 십자가에는 거룩함의 완성이 들어 있습니다. 십자가가 아니면 영혼 구원도 없고 영생의 희망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살아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지나, 지식, 경험 그리고 자신의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섭리대로,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입니다.   

스코트 펙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랍비의 선물이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수도원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이 수도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수도원을 흠모하고 찾아 들었습니다. 그러나 불신과 갈등이 심화되고 인간성의 노출 등으로 점점 수도사들이 줄기 시작을 하고 나중에는 다섯 명의 수도사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을 문 닫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들은 옆에 있는 유명한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도원 문을 닫을까요?’ 랍비는 문 닫는 문제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남아 있는 다섯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메시야가 될 것이라네.’라고 대답했습니다. 랍비의 말을 들은 다섯 수도사는 그 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메시야가 될까? 청소 수도사일까? 빵 수도사일까? 원장수도사일까?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메시아가 될 것이란 말을 들은 후에 수도사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를 메시야 대하듯 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기 시작하자 수도원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고 은혜가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문 닫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 십자가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듯 이웃을 대하는 것입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약한 그대로 받아주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웃을 그렇게 대하는 것입니다. 메시야로 여기며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있었기에 새 생명을 얻은 나는 과연 어떠합니까? 주의 뜻보다는 내 뜻을 고집하고, 고난의 길보다는 편안한길 쉬운 길만 찾고,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않는바 악만 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종려주일 아침 우리의 신앙적인 실존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지기로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종려주일의 의미입니다. 신학자 루더포드(Rutherford)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무거우나 감미로운 것이다. 새에게는 날개가 무거운 것이나 날개 때문에 날아가고 배에도 그 돛은 무거우나 돛 때문에 앞으로 가듯이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십자가가 짐이 되고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 십자가가 우리를 천국으로 전진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를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깊은 뜻을 헤아리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를 향해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은혜를 날마다 감사하면서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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