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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여기 한 아이가 있어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20.05.03  
조회 : 45  
  본문말씀 : 삼상1:17-28,요6:5-14

어느 교회학교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천국에 관한 설교를 하시고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다 손을 드는데 이상하게 한 어린이만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왜 손을 들지 않니? 천국가고 싶지 않니?’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 ‘저는요 엄마가 교회에서 예배 끝나면 곧장 집으로 오라고 했어요!’ 어린이 주일 꽃주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그리고 성도 여러분의 가정에 속한 모든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요즈음 열흘째 손주랑 살고 있습니다. 잠자기 전에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리고 기도해 줍니다. 잠자는 동안 키가 쭉쭉 자라게 해달라고 합니다. 할아버지 새벽기도 나갈 때에 깨어나지 않고 푹 자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어머니 한나의 신앙으로 인해 사사로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세워지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사무엘입니다. 한나는 은혜라는 뜻입니다. 결혼을 했는데 아기를 못 낳았습니다. 남편 엘가나가 다른 여인 브닌나를 통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브닌나는 아들을 낳자 한나를 괴롭힙니다. 자기는 아들을 낳았다고 유세를 떱니다. 한나는 원통한 마음입니다. 너무 맘이 아파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보기에 술 취한 여인 같아 보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기를 낳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태를 막았다는 것입니다. 왜 한나에게 이런 어려운 시련을 주었을까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환난이 왔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왔습니다. 질병 바이러스의 재난이 왔습니다. 이런 환난이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가까이 하라는 뜻입니다. 한나는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나실인으로 드립니다. 삼손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실인은 결혼도 안 합니다. 어머니가 죽어도 상복을 입지 않고 시신 옆에 가지도 않고 머리도 깎지 않고 몸에 병이 들어도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병들어 죽게 되면 그것도 하나님 뜻이고 낫게 되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나의 삶 전체를 하나님 앞에 맡긴다는 것입니다. 한나가 술 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원통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얼굴에 수심이 없었습니다. 주실 줄로 믿는 마음이 평안을 줬습니다. 여기 한 아이 사무엘이라는 위대한 거물이 탄생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사명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제사장 사사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신정체제에서 왕정체제로 넘어가는 길목에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여기 또 한 아이가 있습니다. 벳새다 들판에서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아이입니다. 예수님의 설교 말씀을 가슴에 새긴 어린이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물으셨습니다. 빌립이 대답합니다. 각 사람으로 최소한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 것입니다. 그때 이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던 한 아이가 있습니다. 여기 한아이가 있습니다. 가슴에서 심장이 쿵쿵거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품에는 도시락이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주인공입니다. 이 어린이는 안드레의 안내로 예수님께 자기 도시락을 양보하고 겸손히 드렸습니다. 오병이어 이제 더 이상 내 도시락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그 도시락을 드렸습니다. 오병이어 어린 아이의 한 끼 도시락입니다. 남자 오천 명이 배부르게 먹고 열두 광주리 거뒀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도시락을 주님께 드렸지만 굶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어린아이의 이름을 좀 밝혀주셨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은 어린이입니다.   

자녀를 돌보는 부모의 모습이 세 가지라고 합니다. 밀모는 돈으로 밀어 부치는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뛸모는 데리고 다니며 같이 뛰는 부모입니다. 주모가 있는데 자녀가 어찌되든 주무시는 부모님을 말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스타일이신지요?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어린이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기독교 신앙에서 어린이는 누구입니까?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야 하는 세상은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가치는 사라지고 모든 것이 상대적인 세상이 되었고 가치의 다양성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정보혁명이라는 기술과 과학이 함께 만들어낸 첨단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과 종교, 윤리와 철학이 더 필요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명을 운전해갈 가치관과 철학이 빈곤하면 인류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점검하는 어린이 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어린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여기 한 아이가 있어 그 아이는 국가의 소유라고 보는 관점이 있어 왔습니다.    

우리에게 낯설지만 어린이를 국가에 속한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어떻게 보느냐하는 어린이 관에 따라 교육제도가 나왔습니다. 이제까지의 교육제도 중에 가장 엄격한 것은 스파르타의 교육이었습니다. 그 속에 나름의 어린이를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린이가 국가에 속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스파르타에서 출생하는 모든 남자아이들은 낳자마자 부모의 재산이 아니라 철저하게 국가의 재산으로 등록이 됩니다. 국가의 재산인 사내아이는 7세가 되면 나라의 부름을 받아 나라가 운영하는 기숙사에 들어갑니다. 기숙사라고 하지만 사실은 군인 또는 투사를 훈련하는 훈련소입니다. 무섭도록 강한 훈련과 철저한 통제 그리고 빈틈없이 짜여진 학과 공부가 30살이 될 때까지 진행됩니다.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몰아쳐 훈련하는 스파르타의 교육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스파르타 교육은 철저하게 적군을 물리쳐 이기는 군사적인 승리에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벌떼와 같았습니다. 죽도록 일하고 여왕벌 하나를 위한 꿀벌 사회와 같이 스파르타의 젊은이들은 왕의 승리와 영광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결국 스파르타 젊은이들은 그렇게 되어갔습니다. 둘째는, 자기들이 치른 전쟁에서 얻은 노예들을 힘으로 통제하고 누르기 위해 그렇게 교육한 것입니다. 헤로츠(helots)라고 불리는 스파르타의 노예는 전쟁에서 이길 때마다 붙잡아 오다보니 스파르타 국민보다 몇 십 배나 더 많았습니다. 그 많은 노예를 통제하고 부려먹으려면 힘으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이 약하면 노예들은 금방 반란을 일으키고 마는 것입니다. 스파르타 군인인 학생들은 밤이 되면 노예들을 습격하여 건강한 남자 아이들은 모두 죽이곤 했습니다. 그들을 지배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노예를 다스리기 위해 그런 강하고 독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했던 것입니다. 고된 훈련, 복종 강요, 용기만을 중요시하는 군사교육은 전쟁과 살인을 위한 것이었기에 그 교육은 가장 무지막지한 불량배를 양산하는 교육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린아이가 출생하면 그 아버지는 유아를 들어 조사해봅니다. 그래서 약하다고 생각되면 쓸데없는 물건 버리듯 숲이나 길거리나 아무 곳에나 갖다 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면 직업적인 거지가 뒤따라가서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다가 노예로 팔고 투우사로 팔고 잡부로 팔아먹은 것입니다. 결국 스파르타는 망했습니다. 육체의 힘을 위한 교육 그 교육이 엄격하고 일사불란하고 정신력을 강하게 했다고 평가할는지 모르지만 스파르타 교육은 어린이를 전쟁의 도구로 소모품으로 보았기에 결국 망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도 아직 이런 식의 눈이 있습니다. 어린이를 노동의 수단으로 보는 경우 그래서 어린이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런 눈으로 어린이를 보는 세계는 스파르타와 같은 운명을 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인간이 없고 삶의 신비가 없고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에 속한 어린이로 생각하는 세계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둘째로 여기 한 아이가 있어 그 아이는 가정에 속했다고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바로 유대교의 관점입니다. 어린이를 가정에 속한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린이를 가정에 속한 존재로 봅니다. 그것은 유대교의 가정교육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스파르타와는 다르게 민족의 주체성을 가지고 끈질기게 살아오는 민족이 있습니다. 거대한 육체와 놀라운 군사력을 지녔던 스파르타는 사라졌지만 나약하고 힘없이 살아온 작은 민족은 국가를 잃어버리고 긴 세월을 떠돌이로 살아오면서도 민족의 생명을 확실하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유대민족입니다.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까? 그것은 교육입니다. 교육의 힘이 그들의 생명을 이어온 것입니다. 스파르타에도 교육은 있었습니다. 유대인교육보다 더 억세고 전투적이고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교육은 어설프고 엉성해 보입니다. 그러나 강한 교육의 나라 스파르타는 망하고 어설픈 유대교육의 이스라엘은 지금도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대교육은 오늘날도 그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에 매파 지도자였던 랍비 벤 자카이는 자기가 죽었다는 소문을 냅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그를 관에 넣어 몰래 성문을 빠져 나옵니다. 성문을 나온 랍비 벤 자카이는 로마군 사령관을 만납니다. 다 무너뜨려도 자그마한 랍비 학교만은 부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사령관은 그러겠노라하고 정말 작은 랍비 학교 하나는 살렸습니다. 그리고 유대 백성은 그 작은 랍비 학교를 통해 토라와 탈무드 등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가정마다 실천함으로 유대 민족 정신과 가정과 가치관과 신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고대 세계 속에서의 교육이념이라는 책에서 이 유대교육의 신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스파르타 교육이 훌륭한 육체와 훌륭한 싸움의 기술 등을 통해 끝까지 승리할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약하고 엉성한 유대 교육은 유대인을 좌절시키는 교육처럼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파르타 교육과 유대 교육 사이에는 두 가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고 바클레이는 풀이했습니다

스파르타교육은 미처 자라지도 않은 어린이를 나라가 끌어다가 기숙사에서 훈련시킴으로 성정과정에서 받아야 했던 부모의 사랑을 송두리채 부정해버리고 빼앗아버린 것입니다. 스파르타 교육은 힘만 길렀지 그 힘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사랑은 망각하고 놓친 것입니다. 가정이라는 터전이 하찮은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으나 그 곳에는 생명이 오고가며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사실을 스파르타 교육은 부정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이북을 포함한 전체주의 국가가 범하고 있는 잘못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가정을 중심한 교육, 겉으로는 밤낮 외국의 침략만 받아 쇠잔할 대로 쇠잔해지고 결국 나라가 망하는 수모를 당해왔으면서도 그들은 가정을 철저히 지켜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지는 가장 큰 의무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었으며 결혼을 준비시켜 다시 가정을 세우게 하고 실제 생활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랍비가 가르칩니다. 물고기를 잡는 낚시꾼이 물고기를 잡고 나서는 길이를 재보고 큰 것은 놓아주고 작은 물고기는 담는 것입니다.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말합니다. 집에 있는 프라이팬 사이즈가 작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교육을 합니다. 굴뚝 청소한 두 사람 중에 한 사람 얼굴에 검댕이가 묻었다면 누가 얼굴을 씻을까 하는 문제를 냅니다. 보통은 묻은 사람이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안 묻은 사람이 씻는다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아주지 않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교육입니다. 물고기를 잡아주면 한 끼니만 배부르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배부르게 산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포기한 스파르타 가정을 가장 중요시한 이스라엘 이것이 첫 번째 중요한 차이점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스파르타 교육은 사람을 살상하는 군사적 승리에 그 목적을 둠으로 인간의 참된 모습, 인간이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목적인 이웃 사랑을 거부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교육은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길을 따르도록 가르쳤던 종교 교육이었습니다. 모든 이웃을 무찔러야 할 적으로 삼고 그 적군을 이기야 내가 산다는 스파르타의 군인교육이 아니라 모든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그래서 진리와 평화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유대 교육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스파르타와 유대 사이에는 어린이를 보는 눈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스파르타는 어린이를 전쟁의 수단으로 나라의 재산으로 보았습니다. 철저하게 교육하긴 했지만 인간성을 빼앗아 가는 스파르타 교육은 비극적으로 민족을 멸망시켰습니다. 가정을 중심한 유대인의 율법교육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야 함을 가르친 유대의 종교 교육은 민족을 살리고 역사를 이어가게 한 것입니다. 요즈음 군대조차도 스파르타식 교육이 없습니다. 그러나 변질된 모습의 스파르타 교육이 우리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쟁의식 그리고 어떻게든지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어린이에게서 인간성도 가정의 영향력도 빼앗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대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 가정교육도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온 유대인들은 유대주의 율법주의 시온주의를 내세우면서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율법이 남을 심판하는 법으로 전락했습니다. 유대인 가정은 자기들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민족 우월 의식으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어린이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셋째로 여기 한 아이가 있어 이 아이는 하나님께 속했다고 믿고 하나님께 드리는 관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린이는 하나님의 집에 속해 있는 존재라고 보는 눈입니다. 한나는 기도함으로 얻은 사무엘을 젖을 뗀 후에 하나님의 성전에 데려다 주고 하나님의 집에 속한 존재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 아이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임을 믿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놓으신 생명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12살의 예수님이 부모님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절기가 끝나고 집에 가는데 아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찾고 찾으며 되돌아온 요셉과 마리아가 성전에서 묻기도 하고 답하기도 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 어머니 마리아의 말입니다. 여기서 마리아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마리아가 보는 아이 예수에 대한 눈이 중요합니다. 마리아의 눈에 비친 아이 예수! 유대 가정에 속한 존재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리아의 잘못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유대 종교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유월절 행사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논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상한 듯 보이는 예수님의 행동이었습니다.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말씀하시는 어머니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2살짜리 아이가 할 말은 아닙니다. 불경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여기 예수님의 이 한마디 속에 유대교가 해결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어린이는 국가에도 가정에도 속하여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모든 어린이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말인 것입니다. 모든 어린이는 부모에 의해 출생되고 양육되며 국가에 의해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모든 어린이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속하여 있다는 사실을 선언한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어린이를 국가의 재산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재산도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모든 어린이는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새로운 눈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국가이든 가정이든 하나님께 속한 어린이를 교육하고 양육하도록 위임받은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이 주일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통해 우리 주님은 어린이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누구에게 속하여 있습니까?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 이 어린이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존재로 알고 양육하고 가르치는 주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닫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속하여 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합니다. 데리고 오시기 바랍니다. 내 아버지 집을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을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역군입니다. 어린이 주일에 우리의 자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주님이 묻고 계십니다. 어린이는 우상이 아닙니다. 도구도 아닙니다. 나의 욕망의 성취 도구는 더더욱 아닙니다. 닮기는 했지만 나의 분신도 아닙니다. 오직 여기 있는 한 아이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하나님 축복의 대상입니다. 하나님 품안에 있는 자녀입니다. 그 자녀를 하나님께 데리고 오시기 바랍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주인공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는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우리 자녀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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