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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나중 온 이 사람에게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20.07.12  
조회 : 44  
  본문말씀 : 신24:14-15,마20:1-16


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심령의 옷깃을 여미며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재난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 강화된 방역 방침으로 조심스럽게 교회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고 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당일에 품삯을 주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 포도원 품꾼의 비유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포도밭이 많아 수확기가 되면 품꾼을 사서 일하는 것이 보통의 관습입니다. 그런데 품꾼은 많고 일감은 적어 남아도는 노동력은 항상 문제가 되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로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루살렘 탈무드에 의하면 랍비 번이 28세를 일기로 죽었는데 그 장례에서 랍비 제라가 연설을 합니다. ‘랍비 번을 누구와 비교할까? 포도원을 위해 수많은 일꾼을 고용한 왕이 있었다. 그 중 한 일꾼이 탁월한 능력이 있는 일꾼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왕은 그에게 두 시간만 일하게 했다. 품삯을 주는 시간에 왕은 그에게 하루 품삯을 온전히 주었다. 다른 일꾼들이 수군거리며 우리는 하루 종일 일했으나 두 시간만 일한 사람에게도 하루 품삯을 전부 주었다. 왕이 왜 수군 거리느냐 이 사람은 두 시간 동안 일했어도 너희가 하루 종일 한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비록 28세로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다른 랍비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칭찬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주인의 뜻을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부당한 임금지불입니다. 일꾼들은 이중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자기들은 12시간 일하고 나중 온 사람은 1시간 일했다는 것이고, 자기들은 찌는 더위에서 고생하며 일했지만 5시에 온 사람은 선선한 때에 편하게 일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꾼들이 불평할 이유가 없는 것은 주인이 그들에게 불의를 행하거나 약속을 불이행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약속대로 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지 않았느냐 친구야 내가 네게 잘못한 일이 없노라.’ 예수님의 이 비유에서 한 시간만 일한 나중 온 사람은 하루 임금을 다 받을 자격과 이유는 없습니다. 그가 하루 품삯을 온전히 다 받는 것은 오직 그 주인의 자비 때문입니다. 온전히 주인의 뜻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복음의 은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한 시간 뿐이 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하루 종일의 품삯을 주시는 것이 그 분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 귀한 복음을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0장은 세 차례에 걸친 갈릴리 전도를 마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의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 유다 베레아 지방 전도의 사역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앞서 있었던 청년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예수께서는 계명을 지켜라 그러자 그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그 어떤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즉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상급문제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준과 판단으로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구원과 천국관을 알고 계시기에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나라 천국은 그와 다르다는 것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참 선지자이시고 위대한 교사이시고 구원자 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과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적인 뜻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구원을 먼저 받고 은총을 누리는 자는 결코 영적 교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나태하게 굴지 말고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고 수고해야 합니다. 구원을 간절히 원하는 이 재난의 시절에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천국은 마치 품꾼을 포도원에 들여보내는 은혜로운 주인과 같습니다.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마태복음 19장에서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유대백성의 천국에 대한 생각을 바로 잡기 위해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사역이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신 예수님은 이미 수난 예고를 두 번이나 하셨습니다. 곧 이어 세 번째 예고를 하시기에 앞서 오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유대인들의 천국관은 공로교리 개념(Jewish doctrine of merit)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살면서 좋은 일 착한일 많이 해서 공로를 많이 저금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의 때에 잘한 것과 잘못한 것 곧 공로와 부채를 대차대조표 통해 공로가 더 많으면 천국에 가고 빚과 죄가 더 많으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로를 많이 저금해서 상금을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선 자리에서 베드로도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질문하고 있습니다. 공로를 이만큼 세웠으니 어떤 상을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공로교리개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라고 하시면서 이 비유를 통해 천국은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인간 노력의 쟁취물이 아닙니다. 노력의 성과물이 아닙니다. 그 같은 세속적인 천국관을 교정하시려고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공로 헌신 노력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 노력의 우열법칙은 배격되고 신적인 평등이 나타나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 천국의 모습이 포도원 주인에게서 나타납니다.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시장터에 나왔습니다. 해 뜨는 시간 오전 6시를 의미하는 시간에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고 들여보냅니다. 집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은 일꾼의 일터이며 교회입니다. 품꾼은 천국 복음을 위해 택함 받은 일꾼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오전 6시에 들어간 품꾼은 아담부터 노아, 오전 9시에 들어간 사람은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정오에 들어간 사람은 아브라함부터 모세, 오후 세시에 들어간 사람은 모세부터 예수님까지이고, 오후 5시에 들어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부터 세상 끝 날까지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한 데나리온, 당시 노동자 군사의 하루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당시 노동 시장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후한 조건이며 고용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복을 받은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계속 포도원에 일꾼을 들여보내는 이유는 일감이 많아서가 아니라 장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을 본 것 때문이었습니다. 즉 긍휼과 안타까워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인간의 권리가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고용이란 그 자체가 은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포도원 주인의 은혜의 행차는 계속됩니다. 노동 시간이 절반 남은 정오에도 노동시간이 4분의 1 남은 오후 세시에도 계속됩니다. 심지어는 일할 시간이 한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도 이 시간에 고용을 결정하는 것은 은혜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적으로 주인의 자비가 작동한 것입니다. 실직 상태에 대한 사정을 듣고 난 후에 주인은 이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들의 고용조건이 예외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고용조건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을 것이기에 포도원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포도원에 들어가라는 이 말은 엄청난 은혜이고 축복이었습니다. 천국은 마치 이와 같습니다. 오직 주인의 긍휼 자비 은혜가 천국의 모습입니다. 천국을 발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저물 때 곧 종말의 때에 임금을 계산하게 됨을 보여 줍니다.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오후 6시 하루 노동이 끝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품값을 계산하는 시간입니다. 계산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루해가 저물 때에 모든 품꾼들은 기대와 보람으로 충만한 때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품삯을 지불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저물 때는 세상의 종말의 때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 받은 성도들에게는 상급의 중량이 결정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응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거부한 자들에게는 형벌의 중량이 결정되는 최후 심판의 때입니다. 종말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중 온 사람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자까지 품삯을 줍니다. 관례를 깨고 나중 온 자부터 줍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주도권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축복은 시대적 민족적 차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품꾼이 똑같은 품삯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3:22)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3:26-29)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3:10-11)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계산 할 때가 있습니다. 아주 가까이 왔습니다. 그날이 가까이 옴을 볼수록 더욱 사랑하고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 가가시기 바랍니다. 종말이 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종말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의식을 가지고 진지하고 진실하게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언젠가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그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신앙고백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천국의 삶은 오직 은혜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성도들은 자신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스스로 자랑하기보다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 돌리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주인의 선한 뜻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여전히 빈둥거리며 죄와 사망의 그늘에 거했을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찬송함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축복을 족한 줄로 여기며 절대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고후11:9) 나중 온 자가 한 데나리온 받는 것을 불평하는 먼저 온 자는 먼저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종종 타인이 받는 축복을 시기 질투 원망하는 일은 나중 온 사람을 질투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9장에 태어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런 기적을 이웃이 경험했다면 얼마나 축하 받을 일입니까? 함께 기뻐하며 행복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당국자들은 눈이 뜨인 사건을 놓고 안식일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가 죄인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는 것 한 가지는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본다는 이것이라고 간증을 했습니다. 이웃의 구원과 축복을 마음껏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 할 수 있는 넓은 믿음의 마음을 간직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더 받을 줄로 알고 기대했지만 기대가 무너지자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공로 능력 노동 시간에 따른 차등지급을 원했는데 무차별적 균등 임금 지불이었습니다. 종일 땀 흘려 땡볕에서 일한 자신들을 무시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베드로처럼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쫓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공로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최초의 신분을 망각했습니다. 은혜로 고용되었음을 잊었습니다. 그 은혜를 잊으면 안 됩니다.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나중 온 사람의 정신은 바로 은혜의식이었습니다. 주인 얼굴만 보아도 감사하고 써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고 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감사입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비교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공로자 의식 자만심이 있었습니다. 나중 온 시람은 빚진 자 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공로의식은 우리를 율법주의자로 만들고 자기 우상화를 시도하게 하지만 빚 진자의 의식은 은혜를 추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은 바로 이 같은 은혜의식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 질 때에 포도원이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지고 가정과 삶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 시간을 남겨 놓고 일하러 들어간 사람은 먼저 끝까지 장터에 나와 고용해주신 주인이 고마웠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시고자 작정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포도원 일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도 않고 해가 지기 전에 마쳐야 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없이 절망 가운데 서성이고 있었을 나를 고용해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만입이 있어도 다 감사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나중 온 사람에게 먼저 온 사람과 같이 주는 것이 주인의 뜻입니다. 그 사랑 그 은혜가 천국의 모습입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일꾼 된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한 돈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일꾼 된 기쁨을 놓치면 사명인에서 노동자로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리고 먼저 온 사람들은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는 의식이 항상 있었습니다. 먼저 온 자들은 더 받을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이는 자기 의를 내세우는 모습입니다. 내가 이만한 존재이니 이만한 대접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의가 하나도 없는 존재입니다. 다만 나를 부르신 것을 감사할 뿐입니다.   

나중 온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먼저 이 사람은 목적을 위해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는 정신, 즉 인내의 정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 시간 정도가 되면 포기하고 집에 돌아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 온 사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의 정신을 가졌습니다. 나중 온 사람은 하루를 그냥 의미 없이 지낼 뻔 하였는데 자기를 일꾼으로 불러 주신 주인이 너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은혜의식입니다. 부르심에 대한 감격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소명의식입니다. 나중 온 사람은 은혜의식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은혜의식이 주인의 마음에 합한 것입니다. 그가 적당히 일했을 리 없습니다. 한 시간을 일했어도 그의 노동의 질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한 시간 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귀히 여기고 그 은혜의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재난의 시절에 더 깊이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천국임을 묵상하며 천국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저물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종말의 때이며 심판의 때입니다. 종말론적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은혜의식 속에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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