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증언 VOD 주일찬양 VOD
증언모음
수요성서연구/교실
Home > 인터넷방송 > 주일예배 증언방송
   제목 :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20.10.11  
조회 : 53  
  본문말씀 : 왕하 2:8-14, 빌 2:12-18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주님을 따르는 성도 여러분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이 시간 주님의 임재와 성령의 부어주심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석 구석 찾아 가셔서 필요한 은혜를 주시고 치유하시고 힘주시고 용기주시고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재난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져서 질병이 떠나가고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은총 주시기를 바랍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황은 어둠 그 자체였습니다. 그 어둠과 대항하도록 엘리야 선지자를 세우셨던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승천하게 하시고 뒤를 이어 엘리사가 그 사역을 이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타락해도 계속적으로 당신의 종을 보내셔서 계속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촉구하십니다. 구속사를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엘리야의 승천은 엘리야를 영웅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신앙의 최종 승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남아서 싸워야 하는 여호와 신앙자들을 격려하고 소망과 용기를 잃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엘리야의 승천을 엘리사와 선지자 생도들과 모두가 목도하게 하셨습니다. 선지자 생도들은 가장 영적으로 어두웠던 시기에 존재했습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고 이곳에서 예배하라고 했습니다. 아합 왕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바알 숭배 물질 풍요를 신으로 섬겼습니다. 아합 왕의 뒤를 이은 아하시야 왕은 세속적 부귀영화 다 누렸으나 육신의 질병 다리가 아파서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으로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으나 죽음을 보지 않고 영광스럽게 승천하는 엘리야를 대조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승천한 사람은 에녹(5:22-24)과 엘리야 두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414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모형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속받은 백성의 최후 승리로 승천할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고전 15:51-52;살전 4:13-1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하시는 역사가 두 배가 되길 원했던 엘리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결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곧 하나님께 붙어있기를 결단한 것입니다.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엘리야는 개성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섬세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혼자 일했습니다. 엘리사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엘리야는 동굴로 갔습니다. 엘리사는 하인을 부르고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극적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리사는 평범하게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죽은 후 그의 무덤에 던져졌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의 원래 모습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었습니다. 엘리야의 사역이 폭풍우,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 지진과 같았다면 엘리사의 사역은 세미한 음성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을 때 엘리사는 아버지의 밭을 함께 갈고 있었습니다. 엘리사의 아버지는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갑자기 그리고 뜻밖에 엘리사를 부르셨을 때 엘리사는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끊어내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엘리야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셨을 때 그 제자들이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떠났던 것처럼 그도 밭 갈던 쟁기를 버려두고 떠났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9:62)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른 열왕기상 19장과 엘리야가 승천함으로 세상을 떠난 열왕기하 2장 사이에 엘리사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엘리사는 부유한 지주의 아들에서 한 선지자의 하인이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먼저 종이 된 다음에 지도자가 되었습니다(25:21). 그것은 주님이 일꾼들을 세우실 때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부르심에 대한 순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사역이 끝났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 생도들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두 사람이 방문했던 각각의 지리적 장소들은 이스라엘의 과거에도 중요한 곳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길갈에서 출발했는데 그곳은 하나님이 애굽의 수치를 이스라엘에게서 굴러가게 하신 곳이었고,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고 유월절을 기념했던 곳이었습니다(5:1-12). 할례라는 언약의 표시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과 시내 산에서 받은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중한 자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그 사실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길갈에서 두 사람은 아브라함과 야곱(12:8;13:3;28:10-22;35:1-8)과 사무엘(삼상 7:16,10:3)을 기념하는 벨엘로 갔습니다. 그러나 엘리사 당시 벧엘은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를 섬기는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습니다(왕상 12:26-33). 끔직한 불신앙의 장소를 보게 하셨습니다. 우상숭배와 싸워야 함을 보았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걸으며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여리고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던 요단을 향해 갔습니다(3,6). 여호수아처럼 엘리야는 자신과 엘리사가 강 건너편으로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강물을 열어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길갈에서 벧엘로 가려고 하면서 엘리사에게 남아 있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자신을 여리고로 보내신다고 하며 엘리사에게 남아 있으라고 하지만 거절하고 따라갑니다. 여리고를 거쳐 요단에 이르기까지 결코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와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선지 생도들이 하나님이 엘리야를 머리 위로 올려 가실 줄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에 엘리사는 나도 아노니 잠잠하라고 합니다. 머리 위로 취한다는 것은 승천을 의미합니다. ‘너희는 잠잠하라는 것은 너희는 마음을 고요하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나의 사랑하는 주인을 이별하려는 이 순간에 내 마음이 미혹되거나 격동되게 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향한 충성과 사랑이 끈질긴 추종 추격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영적인 현장에서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철저한 따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람 곁에 머무는 것이 축복이고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 곁에 머물고 그렇게 함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동행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본래의 우리 자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일들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곁에 머무는 진품입니다. 가짜가 아닙니다. 우리는 진품이 될 수 있는데 모조품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각각 만드시고(139:13-16), 각각 구원하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개인적인 믿음의 여정을 세밀하게 세우셨습니다(2:10).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주님 곁에 머물게 되길 바랍니다. 주님 곁에 있을 때 용기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하고자 하시는 일은 독특하고 개인적이며 인격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듯 해야 합니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주님께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생명이 걸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두 사람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요단을 마른 땅으로 건너갑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붙어 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 곁에 머물기를 결단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가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심리학에서도 행복하려면 행복한 사람 곁으로 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맛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서 하나님을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 곁에 거하기! 결코 떠나지 않기! 이 같은 신앙의 결단으로 이 재난의 시절에 여러분의 믿음을 세워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구했습니다. 

성령의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는 엘리사를 우리는 욕심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을 해석할 때 우리는 부흥회 버전으로 읽고 싶어 합니다. 축복도 두 배 은혜도 두 배가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갑절의 영감을 구하게 됩니다. 엘리야의 능력의 두 배를 엘리사가 받았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갑절(피쉐나임)는 아버지의 재산 중에 장자에게 주어지는 합법적인 몫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신명기 2117절입니다.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피쉐나임)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즉 이 단어는 다른 형제들보다 장자가 그 아버지에게 받을 두 배의 분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엘리야의 장자로서 장자의 분깃을 요구한 것입니다. 후계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자신이 장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선지자 중에 장자의 역할을 하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두 배의 축복만 생각하는데 엘리사는 두 배의 감당할 사명과 희생을 각오하고 요청한 것입니다.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고 말한 그의 대답은 성령을 두 배로 구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그런 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요청은 엘리야가 보인 열정의 두 배를 구한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는 장남에게 기업의 두 배를 물려주는 유대인의 상속법을 언급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요청은 제가 당신의 영적 후사가 되게 해주셔서 당신의 사역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계속할 수 있는 장자의 특권을 주십시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자기 스승 엘리야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갑자기 데려가실 때 엘리사는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성령의 하시는 역사가 두 배가 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갔지만 엘리야의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보좌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를 통해 자신의 일을 계속 이어가시는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하시는 역사가 사랑하는 성도들의 삶속에서 두 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배의 사명 감당, 두 배의 헌신, 두 배의 열심, 두 배의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도 두 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엘리사처럼 엘리야의 여호와 하나님을 구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야의 겉옷을 취한 엘리사는 그의 겉옷으로 요단 물을 치며 하나님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사에게 임했습니다. 요단 물이 갈라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자는 언제나 자신의 연약함을 자각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자는 하나님께 늘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은혜로 모든 일에 작용하시는 분이시며 또한 완성을 이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수 없는 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즉 순종과 사랑의 삶 안에서 하나님과의 완전한 친교라는 목표점에 도달한 그는 두렵고 떨림으로 즉 자기 자신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룹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불만의 표현입니다. 광야에서 그 백성은 늘 그랬습니다(16:7-8;14:2,27). 시비는 의심하며 불신하는 것이고 불안감 때문에 무언가를 주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들은 구원을 얻고 구원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산을 등정하다가 조난을 당했습니다. 죽을 줄 알았는데 구조대가 도착하였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구원받은 자로서 구조대와 함께 조심스럽게 산을 내려와야 합니다. 내 욕심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구조대가 이끄는 대로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딛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뢰밭 같은 세상입니다.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옮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작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행하시는 하나님 여기 행하시는이란 말은 에너지 공급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하나님은 진리를 밝혀주십니다. 신앙 공동체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십니다. 약한 지체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어려움에 빠진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십니다. 자기 자녀들이 세상에 나가서 싸워 승리하도록 힘을 주십니다. 이 모든 일을 먼저 믿는 우리를 통해서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선하신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나를 희생시켜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하셨습니다. 광야 40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소였고 훈련 기간이었습니다. 원망 시비의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훈련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생명의 말씀을 밝혀라고 말합니다.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그리스도인은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자 모든 남자에게 할례예식을 거행합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침묵으로 여리고 성을 돌게 하십니다. 그 백성의 순종이 여리고를 무너지게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더 이상 나는 없고 오직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상입니다. 뒤틀려 있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밝혀 그 말씀에 의해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곁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 곁을 떠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가족으로 장자가 됨을 결단하십시오. 막내가 아닙니다. 장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선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같은 믿음으로 성령의 하시는 역사가 두 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번호 증언일자 제목 증언자 조회
147 20.10.18 [렘 13:15-17,벧전 4:7-11]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이선균 29
146 20.10.11 [왕하 2:8-14, 빌 2:12-18]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이선균 54
145 20.10.04 [렘 33:1-8,딤 2:1-7]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이선균 29
144 20.09.27 [시 37:1-6, 마 6:25-34]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이선균 42
143 20.09.20 [사 61:1-3, 롬 8:1-11]      영을 따르는 자는 이선균 35
142 20.09.13 [시 102:1-11, 눅 17:11-19]      여호와는 선하신 목자 이선균 40
141 20.09.06 [신3:23-29,마17:1-8]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 이선균 35
140 20.08.30 [신6:4-9,눅19:1-10]      예수님을 보기 위한 길 손민승 48
139 20.08.23 [왕상8:35-40,에엡1:13-19]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이선균 87
138 20.08.16 [시 16:1-11, 히 11:1-6]      믿음이 없이는 이선균 57
137 20.08.09 [겔18:1-4,요9:1-7]      하나님이 하시는 일 이선균 53
136 20.08.02 [시118:1-14,엡1:15-23]      주는 내 편 이선균 47
135 20.07.26 [출15:22-27,요2:1-11]      물이 변하여 이선균 74
134 20.07.19 [단6:19-12, 눅17:5-10]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이선균 61
133 20.07.12 [신24:14-15,마20:1-16]      나중 온 이 사람에게 이선균 52
132 20.07.05 [신16:9-17,골3:12-17]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선균 41
131 20.06.28 [단3:16-23,행7:54-60]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이선균 61
130 20.06.21 [삼상16:6-13,행13:16-24]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선균 68
129 20.06.14 [사40:21-31, 골3:1-10]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이선균 87
128 20.06.07 [렘11:1-8, 눅5;1-11]      말씀에 의지하여 이선균 77
 
 
and 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