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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하나님이 되신 것을 알게 하소서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20.05.13  
조회 : 29  
  본문말씀 : 왕상18:16-46


1. 16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그에게 말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가다가 17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18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2. 지금으로부터 2,850여 년 전 유대 땅에서는 혼자서 수십 명도 아닌 850명의 적을 상대해 이긴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선지자 엘리야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입이라는 뜻이다. ‘나비라는 말은 거품을 물고 말하는 자이다. 그만큼 할 말이 많아서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보다 대변인을 세워 전하셨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선지자이다. 힘 있는 존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변인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권력을 가진 인간의 대변인 되는 것도 그렇게 멋진데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대변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상황 나름이다. 엘리야는 하루에도 수십 번 하나님의 대변인 자리에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당시 이스라엘 왕 아합은 정의나 사랑과는 아예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이스라엘 왕조 역사상 가장 악하고 못된 왕이었던 때문이다. 악한 왕비 이세벨의 꾐에 넘어간 야합은 하나님을 버리고 온 나라를 우상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특히 바알과 아세라라는 음란하고 더러운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왕가의 비호를 받으며 국가의 권력과 경제력을 한손에 움켜쥐고 온갖 부패한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다. 정의와 사랑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의 부패를 가만두고 보시지 않고 대변인 엘리야를 보내 준엄하게 아합의 죄를 꾸짖으셨다. 회개하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분인데 반해 눈에 뻔히 보이는 왕은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생사여탈권을 쥔 권력자이다. 고대 왕정 체제에서 왕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처하는 것과 같았다. 선한 왕이라도 신하들의 바른말이 심기를 거스르면 가만 두지 않았거늘 하물며 아합 같은 악한 폭군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전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겠는가? 더구나 이스라엘의 주력 업종은 농업이다. 농사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 나라의 왕에게 3년 반 동안 하나님의 저주로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마치 중동 산유국에 가서 이제 당신네 나라엔 석유가 안 나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아니나 다를까 아합 왕은 엘리야의 이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서 얼굴색이 변했다. 그래서 왕이 제정신을 수습하기 전에 엘리야는 잽싸게 산으로 도망쳤다. 왕은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 엘리야를 잡아오게 했다. 이에 엘리야는 수배령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정말 3년 반 동안 아침 이슬도 내리지 않는 지독한 가뭄이 이스라엘 전역을 덮쳤다.

 

3. 그 긴 3년 반이란 시간이 지난 뒤 하나님은 엘리야를 다시 아합 왕에게 보내셨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왕의 비호를 받던 바알 신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선지자 400명을 모두 갈멜산으로 불러 모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경꾼으로 하여 거기서 엘리야와 만나게 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엘리야는 엄청난 제안을 한다. 제단에 제물을 놓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가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 제물을 태우는 신이 참신이라고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왕의 진노를 사 지명수배를 받던 엘리야로서는 실로 목숨을 내걸고 하는 몰빵 도박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모두의 이목이 총집중된 상황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도 차마 이 대결에서 발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결은 시작되었고 먼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반나절이 넘도록 온갖 기도와 노래와 춤을 다했다. 굿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칼과 창으로 자해해서 피까지 흘리면서 기도했지만 도무지 불은 내려오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본문의 배경이다.

4. 엘리야는 이렇게 기도한다. ‘오늘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신 것을 알게 하소서.’ 비록 8501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공포하는 선지자는 자기 하나뿐이었지만 엘리야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백성들의 대다수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알과 아세라 신들을 섬기고 있었지만 엘리야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엘리야를 의분에 사로잡히게 한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함부로 업신여기고 그분에게서 등을 돌려 우상과 귀신들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죄악이 온 땅에 들끓었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진 것이다. 엘리야는 이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농사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나라에 3년 반이라는 가뭄은 정말 죽음과도 같은 형벌이었다. 사랑의 하나님이신 하나님께서 왜 그런 고통을 이들에게 허락하셨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이 잘못된 지도자 아합 왕을 따라 바알과 아세라라는 귀신을 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바알은 남성 신이고 아세라는 여성 신인데 이 신들은 몹시 음란하고 피를 좋아했다. 즉 대단히 폭력적이고 전투적이었다. 그래서 바알과 아세라 예배행위는 말이 제사라고 하나 사제들이 음란한 행위를 예사로 일삼고 때론 산사람을 죽여 제물로 바치고 기도하는 피의 제사였다. 사람은 자기가 경배하는 존재를 닮아가게 되어 있다는데 이런 음란하고 폭력적인 신들을 섬기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성적 타락과 음란문화 그리고 폭력 문화에 물들었고 그것이 심각한 국력 쇠퇴를 가져왔다. 한 나라에 폭력성이 만연해지고 음란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버린 결과이고, 폭력과 음란의 신들을 추구한 결과이다. 모든 폭력적이고 음란한 언어와 행동들 뒤에는 반드시 조종하는 무서운 악한 영적 세력들이 있다. 하나님도 안 믿지만 다른 어떤 신도 안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어느 신인가는 섬기고 그에 의해 자신의 가치관과 살아가는 방식을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은 곡식 풍요의 신이어서 바알을 잘 섬기면 땅이 기름지고 하늘에서 비가 잘 내려 농사가 대풍을 이루고 가축들이 잘 번식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바알이 그들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 근원이라고 여기는 것을 하나님은 가만히 보고 계실 수 없었다. 순결하신 하나님은 음란한 바알 신을 용납할 수 없고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은 폭력적인 바알 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에게 생명의 근원인 비를 기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은 더 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알이 상징하는 비를 끊어 버리시고 3년 반 동안 무서운 가뭄을 내리신 것이다. 60-70년대는 너무 못 살아서 잘살아 보자고 외쳤지만 오늘날 우리나라는 황금만능주의 문화에 물들어 돈을 위해서라면 별 사기와 음모를 다 꾸미는 풍조다. 과연 하나님 없이 풍요만을 추구했을 때 우리의 경제는 실제로 풍요로워지고 있는가? 오늘의 심각한 정치적, 경제적 위기 앞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옷깃을 여미고 자신의 모습을 겸허하게 돌아봐야 한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는 우상을 섬기던 민족이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천하대장군올 세워 복을 빌었고 달에다 빌고 해에다 빌고 명산 계곡마다 산신에게 빌고 조상님께 빌고 원혼을 달래는 굿을 하여 액땜을 했고 서낭당에 돌 던지고 툭하면 정화수 떠 놓고 빌었다. 비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병 안 걸리고 자식 많이 낳고 잘 먹고 잘살게 해 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만년 보릿고개를 면치 못했던 가난의 역사요 지도층들의 끝없는 부정부패와 갈등의 역사요 외침에 시달린 고통의 역사였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그 우상들에게 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엘리야가 국가의 위기를 맞아서 먼저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 되심을 분명히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듯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우리 민족의 유일한 하나님으로 분명하게 섬겨야 한다.

 

5. 30절을 보면 엘리야는 무너진 하나님의 단을 다시 고쳐 쌓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했으면 예배드리던 장소가 그토록 엉망이 되어 있었을까?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공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병들기 시작하면 인생 전체가 병들기 시작한다. 지독한 가뭄으로 온 나라가 고통 받는 원인의 뿌리가 바로 거기에 있었음을 엘리야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파괴에 있다.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는데 하나님께 죄를 지은 후에 인간은 자연과 싸우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부부갈등 원인도 하와가 하나님에게 죄를 짓고 아담이 하와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생겨났다. 인류 최초의 살인도 가인이 자신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은데 대한 상처로 동생 아벨을 죽인 게 원인이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인간은 전쟁 상태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서진 인생의 문제, 사회와 국가의 망가진 현실을 해결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돌을 가져다가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던 단을 고쳐 쌓았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민족이 화합하고 하나 되는 역사가 동시에 일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회복시키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 이 민족이 하나님 앞에 제대로 돌아올 때 동서도 화합될 것이고, 남북도 하나 될 것이다. 부흥의 바람은 화목의 바람 통일의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적인 사모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6. 36절을 보면 엘리야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순종하여 실천했음을 강조한다.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여기서 중요한 믿음의 원리를 배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순종을 받으시는 분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하나님을 알라딘 램프 속에 들어 있는 마술의 요정 같이 취급하는 성향이 있다. 다신론(polytheism)과 단일신론(henotheism)과 유일신론(monotheism)이 있다. 다신론이 유행했던 고대 헬라 사회에서는 항해할 때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제사 드리고 전쟁할 때는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 제사 드리는 식으로 필요에 따라 신에게 뇌물을 주고 그 신의 힘을 이용 하려고 했다. 마치 신을 자기 종 부리듯이 이용해 먹은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 마음대로, 욕심대로 이미 인생 계획 다 짜놓고 하나님을 불러서 그 일이 이뤄지도록 힘만 좀 빌려 달라고 떼쓴다. 이것은 무당굿 할 때나 귀신 대할 때 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이 보통 어떤 종교를 믿을 때 그것은 자신의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용가치가 있다고 믿어서 혹은 어떤 재난에 대한 예방책으로서 신을 부르고 제사를 드린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은 결코 이런 식으로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 거기에 우리의 뜻을 맞추고 순종해야지 하나님의 뜻을 끌어내려서 우리의 계획에 뜯어 맞추려 해선 안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우리 생각대로 함부로 해석하고 제한된 생각의 틀에 가두려 해선 안 된다. 그분은 왕의 왕이시며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말씀은 공부하고 분석하기 전에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교회에 성경 공부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성경 살기운동이다. 19세기 스코틀랜드에 대부흥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홈쳐 갔던 회사용품들을 다 반환하는 바람에 그들이 갖고 오는 물건들을 쌓아 둘 거대한 창고를 몇 개 더 지어야 했다고 한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 그렇게 삶속에서 실천하게 되어 있다. 말씀에 전도하라고 했으면 전도 세미나만 계속 열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 이웃에게 가서 복음을 나눠야 한다. 말씀에 무례하지 말라고 했으면 이웃을 대할 때 친절하고 공손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교회가 말씀을 하나라도 제대로 실천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으면 기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다. 엘리야는 신앙이란 곧 순종이고 실천임을 보여 주었다. 우리에겐 성경 살기가 관건이다.

 

7.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큰 통 4개에 물을 가득 담아 와서 단에 붓기를 3번이나 하게 하셨다. 돋보기를 갖다 대서라도 불을 붙여야 할 판에 물을 부으라니 엘리야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물을 부으면서도 속으로는 이 물이 휘발유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일을 시키신 이유는 간단하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재물을 불살랐을 때 이 일은 확실히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인간은 간사하여 기도할 땐 하나님밖엔 길이 없는 것처럼 열심히 매달리지만 정작 일이 이뤄지면 자신이 노력해서 한 것처럼 혹은 우연의 일치였던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놓게 하신 것이다. ‘어렵다가 아니라 불가능하다가 되어야 하나님이 개입하셨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니 말이다. 사람들이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아직 하나님께 나오지 않은 까닭은 아직은 자신들의 힘으로 뭔가 상황을 반전시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가능을 선언하도록 절망을 인식하도록 물이 더 부어지기를 기다리고 계신지도 모른다. 믿는 자는 믿음으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이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30:18)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시다.

 

8. 엘리야의 짧은 기도가 끝나자마자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서 제단의 물과 제물을 순식간에 불태워버렸다. 반나절이 넘게 미친 듯이 춤추고 자해하면서 기도해도 아무 소용없었던 우상 신의 선지자들과 아주 대조적이었다. 믿음은 단순하고 쉬운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광적인 예배 의식이나 희생이나 강요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엘리야처럼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회개하고 자신을 정결케 한 사람이 한번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분명히 임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한번 임하면 가장 적대적이고 무관심하던 사람들도 기가 질려서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어 있다. 39절에 보니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서 그는 하나님이시로다!’하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불로써 이 땅에 임하면 확실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너무나 강력하게 천지를 진동시키고 역사를 뒤흔든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이 그분이 주신 진리를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면서 함부로 살 때 불이 임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12:29) 성경에서 불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상징했다. 불은 보호막이었다. 애굽의 전차 수천 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했지만 하나님의 불기둥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불은 나침판이었고 나아갈 안내지도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막에서 헤맬 때 항상 불기둥이 따라다니면서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불은 안식처였다. 얼음 같이 추운 광야의 밤에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몸을 따뜻이 녹여 주었다. 불은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기름 부으심이었다.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솔로몬 왕이 즉위식을 마쳤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제단의 제물을 불살랐다. 신약시대 때는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하늘에서 성령이 불 같이 임했고 그것이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9. 불은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새롭게 씻어 주시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힘이다.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불이다. ‘하나님, 우리에게 불을 주시옵소서그래야 교회가 정말 제대로 된 교회가 되고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정말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빛과 소금 같은 거룩한 사람들로 설 수 있다. 하나님의 불은 무섭고 강력하고 타협할 수 없다. 그러나 불은 반드시 필요하다. 불이 있어야 인간의 죄가 혼합주의 신앙이 적당주의 신앙이 정결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붙이 내려야 이 땅의 음란문화 폭력문화 타락한 거짓이 소멸되어 버린다. 이 땅의 진정한 개혁은 하나님의 불로써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불은 재물과 나무와 돌과 흙과 물을 모두 태워 버렸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불이 임하면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더럽고 죄악 되고 부패한 요소들이 깨끗이 청소된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불이 지나갈 때 무사할 수 없다. 기독교 역사 속에 하나님의 불이 엄청나게 임한 부흥의 순간들이 있었다. 이때 학생들은 컨닝 하던 것을 고백했고 상인들은 손님들에게 사기 친 금액을 내놓았고 도둑들은 훔친 물건들을 가져왔으며 조직 폭력배들은 자신들의 범죄를 자백하고 스스로 걸어서 감옥에 갔고 집을 나갔던 자녀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기적 같은 일들이 속출했다. 하나님의 불이 임한 결과이다. 정말 하나님의 불이 이 땅 구석구석 골목골목을 쓸고 지나가면 비로소 이 땅은 추악한 죄악들이 샅샅이 드러나 심판받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하나님의 불이 이 백성의 가슴 가슴을 뚫고 지나가면 이 백성의 화인 맞은 양심 부패한 생각들은 견디지 못하고 타 없어질 것이다.

 

10. 불이 지나간 그 자리에는 반드시 비가 내린다. 하나님의 칼은 우리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료하기 위한 칼이기 때문이다. 불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면, 비는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한다. 불이 하나님의 정의를 이 땅에 실현했다면 비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짐을 뜻한다. 하나님이 정의만 집행하신다면 무섭고 힘들어 감히 하나님을 견뎌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에 은혜와 용서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부활을 위해 우리를 죽게 하신다. 능력이 임한 자리에, 정결함이 임한 자리에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의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게 하는 열쇠는? 믿음의 사람 엘리야의 기도 때문이다. 불도 그의 기도로 내렸듯이 비도 그의 기도로 내린다. 하나님의 능력이 이 땅에 임하는 것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이뤄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에 달렸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축복이 이 땅에 부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에 달렸다. 2차 대전 때 40만 명에 가까운 영불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밀려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철수하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나치 독일 육해공군이 총력을 기울여 이 철수작전을 저지하려고 했으니 그 많은 병력이 도버 해협을 무사히 건넌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작전 전날 영국의 모든 국민들은 교회로 달려가 결사적으로 기도했고 다음날 칠흑 같은 안개가 도버해협을 덮었다. 또한 예상을 몇 배 뛰어넘는 승전 소식에 두려움을 느낀 히틀러의 공격 중지 명령으로 독일군은 한 쪽만 공격했고, 이에 연합군은 기적적으로 무사히 탈출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교회가 국가의 위기 앞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기도하는 것이다. 어쨌든 엘리야의 기도 후 3년 반 만에 장대비가 억수 같이 쏟아 붓기 시작했다. 아합 왕이 탄 마차는 갈멜산에서 이스라엘로 앞서 떠났는데 두 곳 사이의 거리는 25킬로미터가 넘는다. 그런데 엘리야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한다. 허리를 졸라매고 그 빗속을 달리는데 얼마나 빨리 달렸는가 하면 왕이 탄 마차를 앞질러 갔다고 했다. 왕이 탄 마차니까 나라에서 제일 잘 달리는 말이 끌었을 텐데 어떻게 인간이 그 먼 길을 마차보다 빨리 달렸을까? 엘리야는 사람의 힘으로 뛴 게 아니다. 46절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힘으로 뛴 것이다. 3년 반의 가뭄을 해갈시키는 폭우에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는 왕의 마차보다 앞서 달려가는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힘으로 뛴 것은 좋은데 대체 왜 뛰었을까? 너무 흥분해서 잠깐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의 폭발을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의 축제의 달리기이다. 인간의 힘으론 불가능한 상황에서 1850의 싸움을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 3년 반 동안 잠겨 있던 하늘의 문을 열고 억수 같은 해갈의 비를 주신 하나님을 엘리야는 가슴 벅찬 감격과 기쁨으로 찬양하며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뛰었을 것이다. ‘온 세상 사람들아, 들어라!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이시다! 그는 불을 내리시는 분이고, 그는 비를 내리시는 분이다. 하나님만이 이 민족의 유일한 소망이다.’ 주목할 것은 악한 아합 왕이 이 사건으로도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180도 확 변한 것도 아니었다. 현실은 아직도 냉정하고 답답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가 선포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백성들 앞에서 입증됐다. 엘리야는 기적의 하나님을 체험했다. 그는 가만있을 수가 없어 흥분해서 펄펄 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빗속을 뚫고 달리면서 승리의 자축연을 혼자서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제대로 체험한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살아있는 교회의 감격이고 기쁨이다. 하나님의 불이 임했지만 아직 완전히 회개하지 않고 완전히 변화하지 않은 악한 세상 위에도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는 내린다. 세상은 우연의 일치로 알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한 결과이며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이다. 축복을 축복으로 알 수 있는 자는 참으로 축복받은 자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래서 무관심한 세상 앞에서 빗속을 달리며 찬양하고 예배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모든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겨야 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불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정의와 은혜를 주시는 그 하나님의 비로써만 우리는 영적인 꿈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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