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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나아만의 문둥병이 치유되다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20.10.07  
조회 : 6  
  본문말씀 : 왕하 5:10-27

 

1.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21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22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24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25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2. 나아만은 자신이 옛 생활 환경으로 돌아갔을 때 일어날 종교적인 갈등을 예견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되 그것도 성별한 흙위에서 섬겨서 자신의 이방적인 환경에서는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아만은 타협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에 대해서 미리 용서를 구하는데 엘리사는 이를 평화의 인사로 허락해 준다. 림몬은 셈족이 섬기는 뇌우 및 폭풍의 신인데 열왕기상 15:18절의 다브림몬’(림몬은 좋다)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나아만의 상황이나 경험 가운데 몇 가지는 사도행전 8:26-39절에 나오는 에디오피아 재무 관리의 이야기에서 되풀이 된다. 곧 이 두 사람은 이방인이지만 이스라엘에서 병을 고치려고 하거나 구원을 구하였고, 거기서 하나님의 증인을 만났으며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지니고 자기 나라로 간 것이다. 본문의 게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남용한다. 곧 엘리사가 자기는 선물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것을 똑똑히 밝힐 때 쓴 맹세의 형식으로써 그는 자신이 엘리야의 참된 후계자인 것을 증명하고 그 맹세를 자신의 욕심을 다짐하는 데 쓴다. 게하시가 아람의 대 장군을 이 아람사람(20)이라고 깔보는 식으로 불렀지만 나아만은 게하시를 아주 공손히 맞이하고 그에게 넉넉하게 그가 요구한 것의 갑절을 준다. 나아만은 그 사환을 통해서 엘리사에게 경의를 표시하려 한 것인데 게하시는 엘리사를 섬기기보다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고 또한 선지자 생도들의 빈곤을 들먹여서 자기가 무엇을 소유하려고 한다. 엘리사는 게하시가 거짓으로 꾸민 것을 낱낱이 밝혀내고 그에게 판결을 내린다. 게하시는 결국 나아만의 문둥병에 걸린다. 이방인은 하나님 백성이 되는 길을 발견하고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 백성에게서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

 

3.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한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이 이런 못난 짓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혀를 찬 엘리사가 사람을 왕에게 보냈다.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왕하 5:8). 못난 모습을 보인 이스라엘 왕과 비교할 때 이 얼마나 의젓하고 당당한 태도인가? 그만한 일로 일국의 제왕이 못나게 옷은 왜 찢느냐는 거다. 옷을 찢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 큰 죄를 회개할 때와 국가의 엄청난 재앙 앞에서 하나님께 회개할 때 하는 극단적 행위였다.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위기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평안하다. 당당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항상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 앞에 주눅 들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엘리사처럼 당당하게 그 문제를 내게로 보내라고 한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거룩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결코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다. 엘리사는 이 위기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미 영적으로 감을 잡고 있는 것이다.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리겠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참 선지자의 존재는 참 하나님의 존재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우상으로 가득한 아람 사람들에게 그 어떤 존재도 인생의 위기 앞에서 무력하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알게 하겠다는 것이다.

 

4. 나아만은 엘리사의 기별을 받고 너무 좋아서 부하들과 함께 말과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에 도착했다. 아마 나아만은 자기 같은 VIP가 가면 엘리사가 버선발로 달려 나와 극진한 환대를 해 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엘리사는 환대는커녕 집 안에 들이지도 않은 채 사람을 보내 요단강에 일곱 번 목욕하면 나을 것이라는 말만 전했다. 나아만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11절을 보면 나아만의 분노어린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자기 같은 대단한 자가 왔으면 당연히 선지자가 직접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상처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나아만이 꼭 교만해서라기보다 오랜 세월을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디를 가나 최고의 대우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겨우 사람을 보내서 한다는 말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자기 나라의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은 극히 아름답고 깨끗한 강인 반면에 요단강은 진흙 색깔을 띤 혼탁한 강이었다. 때문에 만일 자기 병을 낫게 하는 데 강물이 효험이 있다면 자기 나라 좋은 강에 가서 씻으면 될 것을 어떻게 이런 더러운 요단강에 가서 씻으란 말인가? 나아만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다. 분명 이 선지자라는 인간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엘리사는 왜 이렇게 했을까? 사실 엘리사는 원래 이런 냉정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이전에는 죽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그 아이의 시체 위에 올라가 입과 코와 눈을 마주 대고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하던 그였다. 그런데 그 멀리서 병 때문에 찾아온 나아만을 왜 이렇게 홀대했을까? 적성국가의 고위층 관리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이것은 늘 최고의 대접에만 익숙해 온 권력자 나아만에게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순종할 것을 가르치는 시험이었다. ‘내 생각에는’(왕하 5:11)하면서 나아만은 엘리사가 이러이러하게 자기를 치유해 줬어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것은 자신이 지금껏 보아 왔던 주술사들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나아만은 엘리사가 그런 주술사들이 아니며 하나님 또한 그들이 비는 이상한 우상 신이 아님을 알아야 했다. 환자가 의사를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안 된다.

 

5. 이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화를 내며 그냥 돌아가려 하는 나아만을 그의 종들이 다시 설득한다. 선지자가 더 큰일을 행하라 명했어도 했을 터인데 강에 내려가 씻는 일쯤이야 왜 못하겠느냐고 말이다. 때로는 종들이 상전보다 더 지혜롭다. 때로는 우리가 무시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던 존재들, 길가의 돌들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처음 엘리사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이 옳지 못한 태도이듯, 우리가 하나님에게 우리 문제를 이렇게 저렇게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분수를 모르는 행동이다. 나아만은 먼저 자신을 치료해 주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겸손히 자신을 맡겨야 했다. 다시 말해, 이 시험을 통해 나아만은 엘리사란 인물이 그 어떤 인간적 권력 밑에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아야 했다. 한 나라의 군대 장관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조건적인 은혜를 필요로 하는 한 죄인일 뿐임을 알아야 했다. 이 같은 깨달음은 병 치료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축복으로서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반드시 이루고자 하시는 바였다. 그것은 구원으로 가는 첩경이었다. 그러나 나아만은 화를 냈다. 문둥병자로 고침을 받으러 왔으면서도 자존심을 세우는 그에게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와서도 자존심을 세우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엘리사에게로 나오게 한 이스라엘 출신 계집종도 그렇고 나아만은 하여간에 좋은 부하들을 많이 둔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 종들을 통해 나아만의 마음을 돌이킨 것은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까지 은혜로 이끌어 주신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에는 그렇게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못 볼뿐이다. 엘리사의 지시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씻은 나아만은 그 즉시 기적적으로 피부가 깨끗해져서 어린아이의 피부같이 되었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던 그 무서운 문둥병이 단 일곱 번 강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완전히 나아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완전히 그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기적이 된다. 축복이 된다. 능력이 된다. 자신의 선입관으로 하나님을 평가하지 말고, 눈 딱 감고 순종하라. 겸손히 하나님 말씀대로 한번 내려서 보라. 기적이 임할 것이다 축복이 임할 것이다.

 

6. 깨끗이 나음을 입은 나아만은 얼마나 기뻤겠는가? 감사로 가득한 마음으로 엘리사를 다시 찾아온 나아만의 관심은 자신을 고쳐 주신 하나님께로 향해 있었다. 자신을 호위하고 온 부하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는 부끄러움 없이 큰 소리로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왕하 5:15)라고 고백한다. 이 같은 공적인 고백은 나아만에게 육체의 구원과 함께 영혼의 구원이 임했음을 보여준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얼마나 축복 받은 사람인가? 육체의 회복과 영혼의 구원이 함께 이뤄지는 축복이 임한 것이다. 당신 주위의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 같은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하라. 너무나 고마웠던 나아만은 하나님의 축복을 자신에게 전달해 준 엘리사에게 감사의 선물을 하고자 했다. 치유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그저 너무 고마워서 감사의 표시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거절한다.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왕하 5:16). 엘리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단호히 거절한다. 그것은 이 치유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감사의 뜻으로 전하는 단순한 선물일지라도 그것을 받음으로써 만에 하나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십자가 보혈을 세상의 무슨 보화로 사겠는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감사하는 일 뿐이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며 그 하나님의 뜻대로 평생 살아가면 된다.

 

7. 엘리사가 선물을 거절하자 나아만은 더 이상 강권하지 못하고 대신 노새 두 마리에 실을 정도의 흙을 달라고 청한다. 그것은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그분께 제사를 드리겠다는 순수한 동기에서 요구한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왕하 5:17). 엘리사가 물질 받기를 거절하자 나아만은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다. 나아만은 단순히 치유 받은 환자가 아니라 이제 확고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확실히 전도가 되었다. 엘리사가 아무런 강권도 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알아서 자연스럽게 헌신의 삶을 살기로 서약한다. 성령께서 자연스럽게 그를 이끌고 계신 것이었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 그냥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쑥쑥 성장하게 되어 있다. 영적성장은 인간이 시키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면 성령님이 알아서 하신다. 나아만은 다만 한 가지만 양해해 달라고 한다. 아람의 군대 장관으로서 공무와 관련해 우상에게 제사하는 의식에 참여할 때가 있는데 이때 아람왕이 림몬 산당에서 경배할 때 그를 부축하는 자신의 공식적 임무에 대해 하나님께서 사유 즉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나아만은 은혜를 제대로 받은 사람이다. 그런 정도의 타협은 적당히 넘어가도 아무도 모를 텐데 성령 받은 새 사람으로서 조금의 양심의 가책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삶의 가장 작고 예민한 부분까지도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내놓는 그 진실함. 우리도 하나님 앞에 그러하자. 하루 전만 해도 전혀 하나님을 모르던 나아만 같은 권력자가 순식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영적으로 쑥쑥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재미있다. 하나님 은혜가 너무 놀랍다. 하나님이 변화시키지 못할 사람은 없다. 나아만 같은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도 자기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위기를 맞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통로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 엘리사처럼 성령 충만하여 늘 깨어있는 자가 되자. 그러면 하나님의 타이밍에 하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나아만 같은 사람을 만져줄 수 있다. 부족함 많은 우리도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8. 아무리 인간적 조건이 화려해도 그 속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자리에서든 자기 문제에만 빠져 있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놀랍게 우리를 사용하실 것이다. 인생의 위기 상황이 닥치면 당장 그 사람의 저력이 드러난다. 천하의 장군이라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조건적인 은혜를 필요로 하는 한 죄인일 뿐이다. 겸손해져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해야 한다. 게하시처럼 거짓말은 안 된다. 탐욕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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