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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방학특강 : 복음서의 비유(12) / 신실한 종과 신실치 못한 종의 비유
   증언자 : 최성원    증언일자 : 20.10.14  
조회 : 14  
  본문말씀 : 마24:45-51, 눅12:42-46
  첨부파일 2020.10.14 - 비유연구(12).pdf (69.7K)  Upload : 2020-10-12 18:51:12


지난 주간도 주님 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요즘 맑은 하늘은 더 높아졌고, 푸르렀던 산은 단풍으로 옷 입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방송으로 진행되는 수요성서이야기 방학 특강, 계속해서 복음서에 나오는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첫째는, 문자적 역사적 해석 방식입니다. 둘째는 알레고리적 영적 해석 방식입니다. 이번 방학 특강은 이 두 해석 방식 중 문자적 역사적 해석에 좀 더 강조점을 두면서 예수님이 처음 비유를 사용하셨을 때 의도했던 말씀, 다시 말해서 본래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비유의 의미와 복음서 기자가 전해준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구분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열두 번째 시간으로 신실한 종과 신실치 못한 종의 비유입니다. 신실한 종과 신실치 못한 종의 비유는 공관복음서인 마태복음 24:45-51, 누가복음 12:42-46에 소개된 비유입니다.

 

 

(1) 본문

마태복음 24:45-51

누가복음 12:42-46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오늘 본문의 비유는 명칭이 학자들에 따라 많이 다릅니다(슈바이처, 엘리스, 헌터, 펜톤, 스미스 등). 비유의 명칭이 다르다는 것은 비유를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를 반영한 것입니다. 흔히 많이 사용되고 있는 신실한 종과 신실하지 못한 종의 비유라는 명칭은 마태복음 본문에 더 부합한 명칭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누가는 서두에서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부합되는 명칭으로는 권위의 자리에 있는 종의 비유혹은 집안일을 맡은 종의 비유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태와 누가가 소개하고 있는 이 비유의 요점은 주인이 집을 떠나면서 집안일을 종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나중에 주인이 와서 그 종이 맡은 일에 충성한 것을 보게 되면 주인은 그 종을 칭찬합니다. 하지만, 그 종이 맡겨진 일에 충성치 못하면 주인은 그 종을 벌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2) 예수님의 메시지

 

이 비유를 예수님은 처음에 어떤 의미로 사용하셨을까요? 오늘도 저는 신학자 다드(C.H.Dodd)의 설명을 소개하겠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나타내는 사상에 친숙해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예언자들, 통치자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표현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당시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종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던”(23:2), “하늘나라 열쇠를 맡은”(23:13, 11:52) 서기관과 바리새인, 율법 교사였을 것입니다. ,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이 비유를 처음 들었을 때 그들은 이 비유의 책임 맡은 종에게서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을 하나님의 신실하지 못한 종으로, 그러면서 그들을 조롱하며 비웃는 것이 본래 이 비유의 목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이 비유를 가지고 예수님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 특히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심판 날이 가까웠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그날에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긴 일에 충성했는지 아니면 그 책임과 권위를 남용했는지를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고 경고합니다.

 

 

(3) 복음서 기자들의 해석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신실한 종과 신실하지 못한 종의 비유를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을까요? 이것은 복음서 기자들이 자신들의 교회 상황에 맞추어 집주인이 더디 오는 것을 재림의 지연으로 해석하여 전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차적으로 서기관과 바리새인 등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을 마태와 누가는 자신들에게 주신 말씀으로도 받게 되었습니다.

 

마태와 누가의 집 주인은 세상을 떠나 하늘로 승천하셨다가 다시 세상 심판을 위해 갑자기 오실 인자 예수님입니다. 재림의 날짜와 시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연된 재림에도 불구하고 맡은 일에 충성했던 종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면, 주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 때문에 방심하고 방탕하여 맡은 일에 신실하지 못하면 나중에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국 초대 교회에서는 이 비유가 믿는 신자들에게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맡은 바 일에 충성할 것을 가르치는 비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태와 누가는 본문에서 약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부분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마태는 이 비유를 재림의 비유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오늘 본문이 재림과 심판의 주제를 다루는 문맥 가운데 있습니다. 이 문맥에 나타나는 마태의 주요 관심사는 주께서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예수님은 생각지 않을 때 오신다는 점입니다.

 

이런 관심은 마태복음 2436, 2442, 2513절에 나오는 반복 문구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인자가 가까이 와 있을”(24:33)뿐만 아니라 생각지 않을 때 인자가 올 것입니다.”(24:44, 50)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주인이 더디 올 것이다”(24:48) 혹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벧후 3:4)를 말하는 사람은 나중에 형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니 주의 재림을 확실히 믿고 끝까지 충성으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지혜로운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후에 달란트 비유와 연결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악하고 게으른 종(25:26)이 되는 것은 맡겨진 달란트로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지 달란트만 보관 하였습니다.

 

둘째, 누가는 주인으로부터 책임을 맡은 ’(둘로스)청지기’(오이코노모스)라는 용어로 사용합니다. 사실 누가는 청지기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누가가 청지기로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가는 이 비유를 특별히 초대 교회 안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권면으로 강조한 것 같습니다. 마태가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즉 일반 신도들에게 주는 비유로 제시하였다면, 누가는 특히 교회 지도자들”, 특히 중요한 책임을 맡은 사도들에게 주는 비유로 제시했다고 요아킴 예레미아스는 지적합니다. 이러한 해석의 근거는 누가가 이 비유의 도입 문구로 베드로의 질문, 누가복음 1241,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를 삽입한 데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41절 이후 바로 오늘 본문의 비유가 나옵니다. 누가에게 있어서 이 비유는 누구에게나 주는 비유가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주님으로부터 중요한 책임을 맡은 열두 제자와 같은 지도자들에게 주는 비유입니다.

 

셋째, 누가는 오늘 본문의 비유를 여행 부분에서 소개합니다.

 

누가는 이 비유에 앞서 깨어 있는 종의 비유’(12:35-40)를 소개하며 마태와 마찬가지로 누가복음 12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의 관심은 오히려 재림보다는 깨어 있어 준비하고 있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주님의 재림과 심판보다 책임을 맡고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청지기의 지혜 있고 진실함’(12:42)을 강조합니다.

 

또한 넓은 문맥에서 보면, 이 비유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12:13-21)에 이어, 무엇을 먹고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12:22-31), 누가복음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는 참다운 주의 제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소유와 재물에 대한 지혜 있고 진실함은 오늘 본문 비유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마태는 제자들에게 맡은 일에 대해 충성하도록 일반화시킨 것을 누가는 사도들 혹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재물 사용에 있어 충성, 지혜, 진실할 것을 가르치는 좀 더 제한적인, 그리고 좀 더 구체적인 교훈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마태복음의 시각을 빌려 본다면, 우리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주인의 기쁨에 맞추어 사용해야 합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는 어리석은 방법을 택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복음의 시각을 빌려 본다면, 재물을 이 땅에만 쌓아 두는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재물을 하늘에 쌓는 지혜로운 자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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