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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아람 군대를 물리치다
   증언자 : 이선균    증언일자 : 20.10.14  
조회 : 6  
  본문말씀 : 왕하 6:1-23



1. 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3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4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6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7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8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9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10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11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12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13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19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20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21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22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23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2. 엘리사의 기적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언한다. 하나님께는 양면성이 있다. 하나님은 아주 크신 분이지만 때로는 아주 작아지실 수도 있다. 민족과 열방을 좌지우지하고 거대한 우주의 역사를 이끌고 가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털 한 올도 헤아리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어떠한 큰 문제도 능히 감당하실 수 있지만 동시에 나의 작은 신음 하나에도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 보면 이 하나님의 양면성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태산 같이 큰 문제도 하나님은 너무 쉽고 간단하게 해결해 버리신다. 또한 감히 하나님 앞에 까지 갖고 가기엔 너무 작아 보이는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섬세하게 응답하신다. 빌려온 도끼가 물에 빠졌다. 아주 곤란한 지경이다. 그런데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하신다. 영적으로 어둡고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은 여호와 신앙자를 세우시고 선한 비전을 보게 하신다. 엘리사는 선지생도들과 함께 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사에게 배우고자 하는 선지생도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바람에 장소가 너무 좁아졌다. 왕을 비롯한 온 나라가 우상 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참 힘들던 그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 준비하는 젊은 선지생도들이 희한하게도 갈수록 많아졌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갑자기 숫자가 불어난 것도 문제였다. 함께 기거할 장소가 너무 좁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한 그들에게는 당장 새로운 장소로 이전하거나 새로운 건물을 지을 돈이 없었다. 이렇게 우리가 살다보면 축복이 바로 위기로 연결되는 수가 있다. 하나님이 사업에 축복을 주셨는데 늘어난 조직과 일을 감당하기 위해 당장 믿고 맡길만한 사람은 태부족이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많이 낳았는데 갑자기 늘어난 생활비와 교육비를 감당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회를 개척했는데 너무 빨리 부흥해서 자리가 비좁아 새 건물을 마련해야 하는데 당장 그만한 땅도 돈도 없다. 남들이 들으면 행복한 비명이라고들 하겠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나름대로 심각한 현실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고맙게도 선지생도들이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발 벗고 나섰다. 자신들이 요단으로 가서 직접 나무를 베어가지고 엘리사와 함께 거할 넓은 처소를 만들어 세우겠다고 자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원자재부터 스스로 마련하여 집 짓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이 선지생도들은 돈은 없고 워낙 사정이 급하니까 그냥 맨몸으로 덜컥 나섰다. 엘리사도 그들의 그런 마음을 고맙게 여겨 축복했다.

 

3. 하나님은 무식하지만 주님을 위한 선한 열정으로 뛰어든 부족한 자들을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키워 가신다.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의 선한 비전을 가진 선지생도들처럼 가진 것과 아는 것이 없는 어려운 상황에도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선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는 길목마다 축복해 주신다. 만일 엘리사가 그때 나아만의 엄청난 사례를 받았다면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이처럼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팔수는 없었다. 어느 시대든 하나님의 참된 일꾼들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쉽게 일하지 않았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매 순간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채워 주시는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 의지해야 산다. 선지생도들이 자기들끼리만 생전 처음 해보는 집 짓는 일을 하러 가기가 불안했는지 엘리사에게 같이 가자고 청했다.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왕하 6:3). 이것은 아주 현명한 처사였다. 실상은 엘리사가 함께 간 것이 아니라 엘리사의 하나님이 함께 간 것이었다. 무슨 일을 할 때든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경험도 없고 인맥도 없고 지식도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갖추셨다. 선한 동기로 시작한 일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든 반드시 하나님의 동행을 간구하자. 그래야 어떤 돌발 상황에도 살아날 길이 열린다.

 

4. 빌려 온 도끼를 물에 빠뜨리는 실수가 생겼다. 다들 요단 근처 넓은 곳으로 가서 먼저 나무 베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그러다가 한 생도가 그만 실수로 도끼를 물에 빠뜨리고 만 것이다. 순간 생도는 비통한 비명을 질렀다.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왕하 6:5). 물자가 흔한 요즘과 달리 당시는 철 연장이 귀하고 값이 비싸던 때였다. 그래서 선지생도 형편으로는 돈 주고 살수 없어서 사정사정해서 남에게 빌려온 것인데 그게 물에 빠져 버렸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집 짓는 작업이 늦어지게 된 것은 둘째 치고 당장 도끼 값 물어낼 일이 큰일이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엘리사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디 빠졌느냐물어본 뒤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다. 그랬더니 쇠로 된 그 무거운 도끼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본문에서 엘리사가 가로되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왕하 6:6)라고 한 말에 그 답이 있다. 엘리사가 한 것이 아니었다. 엘리사의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엘리사는 다만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고 하인이었을 뿐이다. 아무리 큰 문제도 하나님의 사람이 곁에 있으면 해결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그분의 능력을 무한정 끌어다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문제 앞에서 절망하지 않는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확실히 믿기 때문이다. 문제 앞에서 그는 더욱 강한 영적 전신갑주를 입는다. 문제가 생기니까 갑자기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뀐다. 하나님의 사람이 움직이니 하나님께서 도끼를 떠오르게 하셨다. 하나님은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자기백성의 곤란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주신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도끼가 떠오르다니 이는 절망 중에 소망이 떠오른 것이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돌아온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하나님, 오늘 우리의 도끼도 떠오르게 하옵소서! 우리의 절망도 소망으로 변하여 떠오르게 하옵소서! 내가 잃어버리고 슬퍼했던 그 소중한 것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지금 이 순간 나를 가장 짓누르고 있는 현실문제의 해답이 떠오르게 하옵소서!’

 

5. 엘리사의 공적사역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그 대적으로부터 지키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펼쳐져 나간다. 아람 군대의 계속되는 침략 계획을 엘리사가 무산시킨다. 이스라엘의 적 아람은 수시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아람 왕은 참모들과 극비리에 전략회의를 열고 간첩들의 정보를 참고로 하여 필승 전략을 짰다. 이곳에 군대를 보내 먼저 군사적 요충지를 선점하여 이스라엘의 허를 찌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엘리사가 그때마다 이스라엘 왕에게 아람의 작전 계획을 알려 줌으로써 번번이 아람의 작전 계획이 좌절되었다. 낭패를 당했다. 왕과 핵심 참모 몇 사람들이 극비리에 의논하여 전광석화처럼 군대를 움직였는데 항상 이스라엘 군대는 귀신같이 먼저 그 자리에 진을 치고 대비하고 있으니 아람 왕 입장에서는 머리가 쭈빗 설 노릇이었다. 처음엔 우연의 일치인가 싶었는데 그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아람 왕의 마음이 번뇌하였다고 했는데 이를 원문으로 보면 화가 나고 답답하고 힘들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화가 난 나머지 혹시 우리 중에 이스라엘 쪽과 선이 닿은 스파이가 없냐고 참모들을 책망했다. 최첨단 도청 장치를 달은 것처럼 이쪽 최고 지휘부의 극비 회의 내용을 저쪽에서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으니 그렇게 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람왕의 참모들 중에도 똑똑한 자가 있어서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냈다.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한 말일지라도 정확하게 알아서 이스라엘 왕에게 알린다고 했다. 이로 보건대 당시 엘리사의 명성은 아람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엘리사가 무슨 힘이 있어 아람 왕의 은밀한 전략회의 내용을 알았겠는가? 9절에 보면 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라고 되어있다. 도끼 사건 때처럼 이런 국가적 위기 앞에 다시금 엘리사는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입은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아람 왕의 악한 전략회의 내용을 엘리사에게 다 알려주신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과 해석을 하나님이 밤에 다니엘에게 은밀히 알려 주신 것과 같다. 그 어떤 은밀함도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는 속속들이 다 드러난다. 이러니 단한명의 하나님의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역할이 작지 않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4:6). 이 영적법칙을 모르니 아람 왕은 혼란스럽고 화가 난 것이다. 나라를 지키는 진정한 힘은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영적 분별력이 있는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의 기도와 순종과 지혜를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어떤 악한 세력과 음모도 궤멸하신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다. 이런 때일수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20:7-8).

 

6. 이제 아람 왕은 대군을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보낸다. 우둔한 자는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다고 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힘으로 자신들의 참모 회의 내용까지 꿰뚫어 본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고 더 이상의 도발을 중지했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아람 왕은 또다시 무모한 짓을 저질렀다. 어쨌든 인간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사태는 심각했다. 개미떼 같은 아람의 대군은 엘리사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엘리사가 살고 있는 도단이라는 도성을 겹겹이 포위했다. 서릿발 같은 위협과 창검과 병거로 무장한 병사들은 살기등등했다. 자신들의 성이 대군에게 완전히 포위됐음을 본 엘리사의 종 하나가 기겁하여 엘리사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비명에 찬 절규를 내지른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왕하 6:15). 계속해서 반복되는 교훈이지만 영적으로 충만하지 않은 사람은 문제만 터지면 어쩌면 좋으냐고 비명을 지른다. 당황해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절망하고 도망갈 궁리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다르다. 영적인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군대가 보인다. 엘리사는 침착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자신의 사환에게 들려준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왕하 6:16). 이 무슨 소리인가? 아람의 군대는 어림잡아 성 안 전체 사람들 보다 몇 배나 많은 데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엘리사의 사환은 순간 당황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자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한다.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왕하 6:17). 그 순간 그 기도의 응답으로 엘리사의 사환에게도 영적인 눈이 열렸다. 그러자 인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을 때는 전혀 보지 못하던 영적 차원의 새로운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포위당한 건 엘리사가 아니라 아람의 군대들이었던 것이다. 포위당한 건 우리가 아니다. 어둠의 세력들이다.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68:17). 왜 두려워 하는가? 왜 무서워 하는가? 문제는 왜 그렇게 커 보이는가? 영적인 눈이 어둡기 때문이다.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비명 질렀던 제자들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유령이 보인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뜨고 보면 주님이 보인다. 믿음의 눈을 가진다고 해서 문제가 어디 가는 게 아니다. 다만 문제보다 더 크신 주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아람 군대가 강하고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보다 훨씬 강하고 많은 주님의 군대가 나를 지키고 계신다. 이 사실을 확신한다면 이 사실만 볼 수 있다면 어떤 고난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눈을 들어 주의 영광을 볼 수만 있다면 사람 앞, 문제 앞에 기죽지 않을 것이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10) 주님의 군대를 보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사환을 위해 엘리사가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의 눈을 열어주셨다. 세상 문제가 너무 커 보인다면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주님이 너무 작아 보인다면 기도해야 한다. 기도가 답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3). 기도해야만 볼 수 있는 크고 비밀한 세계 영적인 비전이 있다는 것이다. 자아가 살아서 내 생각이 너무 많을 때는 절망만 보인다. 똑똑한 사람은 절망을 잘 보는 사람이다. 절망을 잘 봐서 뭘 하겠는가. 그러나 기도하면 영적인 세계가 보인다. 열린다. 주님이 보인다. 기적이 보인다. 소망이 보인다. 나를 둘러 진치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가 보인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34:7). 하나님만 바라보자. 그러면 어떠한 환난에서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이다. 영적인 세계를 보는 축복이 성도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한다.

 

7. 엘리사는 연이어 몰려오는 아람 군대의 눈이 잠시 어두워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 즉시 하나님께서 기도대로 아람 대군의 눈을 잠시 안 보이게 해 버리셨다. 아무리 잘 무장하고 잘 훈련된 군사라 해도 갑자기 장님들이 되니 순식간에 그 자리에 서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사실 자기를 죽이러 온 병사들이니까 엘리사는 기도로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이들을 순식간에 전멸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들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지 않았다. 엘리사는 자신의 안전만이 아니라 아람 병사들의 생명도 보전하고자 했다. 엘리사가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한 것은 단지 아람 군대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엘리사는 눈이 안 보이는 그들을 인도해서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 안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다시 기도하여 눈을 뜨게 했다. 어리둥절한 아람 군대가 눈을 떠서 주위를 둘러보니 적국 이스라엘의 수도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높은 성벽 주위로 엄청난 숫자의 이스라엘 군대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활을 겨누고 노려보고 있는 상황이다. 명령만 떨어지면 모두 전멸이었다. 원수 같은 아람의 정예부대가 제 발로 함정에 굴러 들어온 셈이라 이스라엘 왕은 흥분하여 엘리사에게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왕하 6:21)라고 묻는다. 엘리사의 허락을 구하기보다 확인을 구한 것이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을 말리면서 말했다.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라도 함부로 죽여선 안 되거늘 어찌 하나님의 능력으로 포로 된 자들을 죽이겠냐는 것이다. 아람왕의 대군이 이렇게 제 발로 이스라엘의 포위망에 들어온 것은 결코 이스라엘 군대의 힘이 아니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역사였다. 은혜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선물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처리해선 안 된다. 그래서 엘리사는 오히려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음식을 먹이고 순순히 돌려보내라고 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25:21). 이로써 아람 군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엘리사의 목표는 단순히 자기 생명을 건지는 것도 아니었고 아람 군대를 죽이는 것도 아니었다. 엘리사는 아람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보여 주고자 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이 모두 변화 받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주고 싶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악을 이기는 방법은 똑같이 악으로 맞받아치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1). 미움은 사랑으로 이겨야 한다. 다툼은 용서로써 이겨야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방법이다. 자기를 못 박은 자들까지도 용서하는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셨다. 엘리사에게 예수의 영이 임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주 작은 문제, 잃어버린 도끼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신다. 동시에 아람의 군대가 쳐 들어오는 큰 문제도 하나님은 해결하신다. 중요한 것은 크든 작든 모든 문제에서 섬세한 영적인 분별력을 갖는 일이다. 현실에 압도되지 말고 영적인 눈으로 문제보다 크신 주님을 보자.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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