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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2021년 9월 12일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2021-09-12 10:06:59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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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높고 푸른 하늘과 곡식을 익게 하는 따가운 햇빛을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놀라운 마음으로 찬양을 드립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다윗 자신은 백향목 궁전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언약궤는 회막에 있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지을 수 없다고 하실 만큼 다윗은 전쟁을 많이 했고 그 손에 피를 많이 묻게 했다고 해서 하나님은 다윗의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경계를 완전히 쟁취하고자 전쟁을 많이 했습니다. 이 같은 정복 전쟁 중에서도 그 대세를 결정하는 중대 결전은 아람 암몬 연합군과의 일전이었습니다. 전쟁을 치르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가 오늘 본문입니다. 암몬 자손의 나하스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자 다윗은 조문단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암몬 관리들이 간첩으로 몰아 조문 온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냈습니다. 다윗의 노여움은 어떠했겠습니까? 다윗에게 미움을 사게 된 것을 안 암몬은 아람 사람과 동맹을 맺고 다윗과 싸우려고 했습니다(삼하10). 그 중대한 결전을 앞두고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왕이 되심을 고백한 본 시편을 출정시 또는신정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구속사적 신정사상에 근거하여 백성과 세우신 왕이 약속의 땅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 약속을 실현하려는 전쟁에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승리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출정을 앞두고 기도하는 시편20편과 승리를 감사하는 시편21편과 같은 배경입니다. 20편은 다윗이 암몬 아람과의 전쟁 출정 전에 제사 드리며 부른 것입니다. 21편은 출정하면서 드린 간절한 기도에 은혜의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승리하게 됨을 감사하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시편144편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시길 기원하며 승리를 확신하는 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행하는 전쟁은 악한 세력과의 영적 싸움의 연장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전쟁 승리는 구속사적 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종말론적인 승리와 평화와 번영에 대한 신앙 고백적 찬양은 재림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왕국에서 그의 백성이 누릴 종말론적인 축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의 전쟁 속에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고 현재의 전투에도 개입하시어 승리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본시는 다윗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찬양하는 신정시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질문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라는 물음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시편84-5절입니다.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8:4-5)

사람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대상이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며 그 손이 다스리시는 백성입니다. 창조신앙 피조물됨을 인식하는 믿음은 우리의 존재의 뿌리가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없이는 인간의 삶은 불가능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기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시기에 나의 삶의 모든 부분은 하나님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라는 물음에 대해 성경은 철저하게 타락한 죄인이라고 합니다.

‘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144:3-4)

헛것 같다는 것은 한숨 같다는 뜻입니다. 인생무상입니다. 이외에도 성경은 우리 인생을 진토(103:14) (벧전1:24) 안개(4:14) 등에 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인생의 연약성과 무상함 그리고 비천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림자()그늘’ ‘영상’ ‘망령이란 의미로 실체가 아닌 허상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인생이 그림자 같은 것은 그만큼 덧없음을 의미합니다. 석양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해가 넘어가면 언제 없어지는 지도 모르게 사라집니다. 인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무가치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윗은 인간의 무가치성을 사람 곧 에노스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약하다’ ‘잃다는 뜻으로 에노쉬라고 한 것입니다. 인간의 무의미성 인간의 연약성을 표시한 것입니다. 아담은 ’ ‘먼지땅에서 지음 받아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우주에 비하면 더욱이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과 비하면 무가치하고 유한하고 연약한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라는 질문에 오늘 사도 바울은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배반하는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에덴의 타락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렸습니다. 그 깨진 관계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대표와 연합의 원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담이 죄를 지은 것은 대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아담에 연합하여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정말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구원하기에는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는 영광, 미래에 하나님의 성도들이 누릴 영광,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에게 부여해주신 하나님의 칭찬 위로 인정을 영광이라고 합니다. 다른 피조물에게는 주시지 않고 오직 사람에게만 부여하신 구분되는 특권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일치되는 하나님의 창조 이상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는 모든 인간이 지금은 하나님의 창조 이상에 미치지 못하지만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서는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완전한 모습을 회복하는데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이 죄인됨의 자각 없이는 구원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 이렇게 말합니다.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른바 악덕목록’(1:29-31)에서 사도 바울은 인간의 잘못된 모습을 폭넓게 열거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의 이기심에 내버려두신 결과가 어떠한지를 드러내 보입니다. 인간이 맺는 모든 관계가 악독으로 오염되었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행동하는 동안에 점점 더 죄와 타락에 빠져들어 가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이처럼 타락한 존재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라는 질문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인간은 부패했고 전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구원하기에는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절망에 빠진 인간,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은 죄 없으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 제물로 택하셨습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죄인의 죄를 죽음으로써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동시에 만족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순종하셔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인 인간을 위해 친히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구속 사역을 성취시키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능동적으로 일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의를 얻을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열어 놓으셨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이 취해야 할 자세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적용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십자가에 나 대신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 법적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다는 것은 이신득의입니다. 이신득의에서 인간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인간 편에서는 그 어떤 자랑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업적도, 노력도, 공로도 자랑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지독한 죄인이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14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15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16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15:14-16)고 했습니다. 그리고 욥도 고백하기를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7:17-18)라고 말하며 이제까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말했다고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전적인 무능, 무력, 무지함을 토로한 후에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 내 눈으로 뵈옵나이다고백함으로 자신의 모든 고난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사람은 무엇입니까?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입니다.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타락한 존재입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라는 물음에 대해 성경은 구원역사에 있어서 사랑의 대상 곧 새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144:3)

무가치하고 유한한 인생,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지만 변곡점이 있습니다. 그 변곡점은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이 고백 속에 사람의 가치가 들어 있습니다. 연약하고 무가치한 인간이지만 침체에 빠진 인간을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저를 생각하시고, 사랑하시고, 돌봐주심으로 인간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시며’(자카르)기억하다’, ‘마음에 두다’, ‘생각하다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두십니다. 하나님이 생각해 주십니다. 권고해 주십니다(피카드). 하나님이 방문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보살펴 주십니다. 하나님이 돌보아 주십니다. 연약한 인간을 향해 하나님이 찾아오심으로 인간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관심을 가지시고 사랑으로 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녀로 삼고자 하는 소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해결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 위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있습니다. 물 같은 존재가 포도주 같은 존재로 바뀌었습니다. 가치와 향기와 맛이 달라졌습니다. 무가치한 인간을 무한한 가치의 인간으로 바꾸셨습니다.

‘1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2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하나님을 반석(추르)이라고 고백합니다. 반석은 견고함 안전 그리고 영원히 지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전과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영적인 전쟁에 친히 개입하셔서 일일이 지시하시고 승리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낮 목동에 지나지 않던 다윗을 들어(삼상16:11-13) 거대한 골리앗을 무너뜨리게 하셨습니다(삼상17:32-54).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기게 하셨습니다(삼상30:1-30).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사 함께 하시니 다윗은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은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2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하나님은 나의 사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미천한 인생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에 대한 감탄의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영원하시고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비할 때에 지극히 미천한 존재 먼지 같은 깨어지기 쉬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사람을 생각하시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탄성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인생은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벤 아담) 인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서 하나님의 관심과 돌보심과 사랑을 받는 존재가 사람이고 인생입니다. 사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는 고귀한 존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 주님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새 피조물이 된 구원받은 존재입니다.

구속이란 말은 값을 지불함으로 풀려나다’ ‘노예시장에서 구입하다는 뜻입니다. 죄인 위해 보혈로써 값을 지불하심으로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속의 결과로 죄악된 것 빚진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어 자유와 구원을 얻었고 죄에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 ‘카리스’ ‘은혜입니다. 죄인에게 관용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극단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극단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 구속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구원은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무죄선고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구속의 결과입니다.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에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공의, 인간의 구원이 모두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이 질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임을 선포합니다. 이 구원의 진리를 믿는 모든 성도 여러분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사람의 존재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창조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대상(8:4-6)입니다. 범죄에 있어서 하나님의 혐오의 대상(15:14-16)입니다. 구원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7:17)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접의 대상(2:5-9)입니다. 심판에 있어서 하나님의 배려의 대상(144:3-4)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새롭게 지음 받은 새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우리를 생각하시고 권고하시고 돌보시나이까?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죄인인 인간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달으며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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